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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Apr 12. 2023

혹시 전생에 내 하인이 아니었을까요?

(1) 선의의 기준을 모르겠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친한 지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맙기까지 했다.


"이런 부탁을 할 정도로 나를 신뢰하는구나."


늦은 야근으로 피곤할 때에도, 주말에 늦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나는 친한 지인들의 부탁은 흔쾌히 들어주었다.


어느 주말, 역시나 도움을 요청한 지인 중 한 명을 도와주고 있는데, 갑자기 그 지인이 나를 향해 방긋 웃으며, 한마디 한다.

"00 씨는 전생에 내 하인이었나 봐요. 이렇게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발 벗고 나서주는 거 보면요."


나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똑같이 환하게 웃으며, 말해 주었다.

"내가 아니고, 00 씨가 하인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현생에서 내가 갚고 있나 보죠."




선의로 한 행동이었다.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고, 부탁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나라서 고마웠다. 하지만, 그들의 깊은 속내는 "내가 아무 때나 부르면 와서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는 . ."나 보다.


그 이후, 나는 그들과 선을 그었다. 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어려운 마음으로 나한테 부탁했을 거라는 생각을 접었다.


그러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바로 가까이에 부탁만 하면 뭐든지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내가 왜?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00 씨가 하면 되는데, 내가 괜히 손대면 00 씨가 더 힘들지 않겠어요?"


이렇게 보니 또 내가 문제인 것도 같다. 나는 왜 무조건 다 들어줬을까?

한편으로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러면, 내 선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행동이 선의가 될 수는 있는 건가?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그 지인을 예전처럼 좋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부탁을 자주 했지만, 그럴 때마다 '해보고는 가져온 거야? 아예 시도도 안 해본 거 같은데.'라는 의심이 든 것이다.


그러자 좋은 마음으로 들어줄 수 없었고, 나중에는 하나씩 거절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 중 누구와도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바람처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 인연.

하지만, 가벼운 인연 속에도 행복은 있었기에, 그들은 내게 좋은 인연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정신승리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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