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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y 05. 2023

김 군의 아르바이트

짧은 이야기

“어때요? 어렵지 않죠?”


어렵지 않다니, 쉬어도 정말 쉬웠다. 이런 꿀 알바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억울할 정도였다.


“하루 300장만 하면 된다고 하셨죠?”
“네. 300장만 하면 일은 끝납니다. 하시겠습니까?”
“그럼요.”


김 군은 조금 텀을 두고 대답했어야 했나 싶었지만, 그러면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서 바로 승낙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김 군은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작은 책상 하나와 태블릿 한 대가 놓여있었다. 김 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기종의 태블릿을 보고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김 군은 바로 태블릿을 켰다. 화면에는 연필로 기초 작업한 만화 한 컷이 그려져 있었다.


“사분할로 해놓고 작업하면 편하다고 했지.”


김 군은 작업하기 편하게 기본 세팅을 미리 해놓았다. 확실히 쓰던 태블릿이라 작업하기가 편했다.


“그럼 기본 세팅은 끝났고, 이제 시작해 볼까?”


일은 간단했다. 그림에 소질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냥 기초 스케치를 해놓은 만화 컷들 배경에 상황에 맞는 색을 채워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첫 번째 장면은 신중하게 선택했다. 갓난아기가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김 군은 어울릴 만한 색을 이것저것 넣어보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베이비핑크를 선택했다. 김 군은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저장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처음만 그랬지,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아기가 있으니 이번에도 핑크색 계열로 해볼까. 그런데 엄마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네. 그럼 조금 어두운 색으로 가볼까?”


김 군은 계속해서 배경색을 선택하고, 저장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화면을 얼핏 보고도 색을 선택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보지 않아도 다음 화면에 어떤 배경색이 올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근데 진짜 장편 만화인가 보네. 편수가 왜 이렇게 많아. 뭐, 나야 좋지만.”


엄마 품에 안겨 울던 아이는 어느덧 학생이 되었다. 김 군은 만화 장면에 학생만 보이면 별다른 고민 없이 어두운 색으로 채웠다. 주인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군이 보기에 주인공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교우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고. 무슨 주인공이 잘하는 게 하나도 없냐. 차라리 반장이라는 아이가 주인공이면 좋겠다.”


분수도 모르고 학교 제일 인기녀에게 고백하지를 않나, 집안 환경이 어려운데 유학을 보내달라고 떼를 쓰질 않나,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두운 색으로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만화는 계속해서 어두운 상황으로 이어졌고, 김 군은 밝은 색을 사용하는 일이 점점 사라졌다. 색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지니, 김 군의 일은 수월해졌다. 첫날에는 거의 다섯 시간 걸렸던 일이 이제는 한 시간이면 끝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김 군은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실행하기로 했다. 바로 만화 속 사람들의 표정을 파악해서 기존 컷에서 비슷한 표정을 가진 사람이 있는 컷의 배경색을 자동으로 가져와서 칠해지게 하는 작업이었다. 그럼 컷을 일일이 보지 않아도 자동으로 칠해질 테니, 오래 걸려도 십 분이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황을 보지 않고 칠한다는 것에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까지 내용으로 봤을 때, 주인공의 삶이 딱히 좋아질 거 같지 않았다. 대부분이 어두운 색 계열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기에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해보고 안된다고 하면, 지금처럼 하는 거고.”


프로그램을 조금 손 보고 난 후, 김 군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작업은 정말 경이적이었다.


이거 대박인데. 그래도 최소 10분은 걸릴 줄 알았는데. 5분밖에 안 걸리잖아.”


김 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동으로 칠해진 색을 빠르게 점검했다. 조금 걸리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김 군은 자동으로 칠해진 만화들을 담당자에게 넘겼다. 담당자는 김 군의 작업을 빠르게 훑었다. 김 군은 살짝 긴장했지만, 담당자는 평상시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오늘도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일당을 건넸다.


김 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익숙해져서 300장 넘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일감을 더 받을 수는 없을 까요?”


담당자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300장 정도가 편할 겁니다.”


김 군은 자신을 위해서 편하다는 말인지, 아니면 담당자가 관리하기가 편하다는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담당자의 곤란한 표정에 더 많이 하는 걸 포기했다.

왠지 조금 더 밀어붙이면 허락해 줄 것도 같았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곤란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진심으로 더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이었다.


“뭐, 300장만으로도 충분하지.”


어느덧 시간이 흘러 김 군은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만화 속 주인공도 나이가 들었다. 하루에 5분도 안 걸리던 일이지만, 이 날 김 군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일을 끝낼 수 없었다.


“왜 300장만 하라고 했는지 이제 좀 알 거 같네. 좀 더 장수를 줄여주시지. 300장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김 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담당자가 듣고 있을 거라고 김 군은 확신했다.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던 색들이 제 인생을 이렇게 바꿔 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김 군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그렸던 만화를 꼼꼼히 훑으면 눈물지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김 군은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음에 감사하며,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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