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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y 20. 2022

엄마의 고단했던 신혼 생활

그리고 결혼에 대한 나의 마음

엄마는 26살에 옆 동네 사는 아버지를 소개받았다. 당시 여자 나이 26살이면 노처녀 소리를 듣던 시기였기에 엄마는 아버지를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서둘러 결혼을 했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시작된 서울 생활. 하지만, 엄마에게 달콤한 신혼 생활은 없었다. 아버지가 결혼 후, 남동생과 어린 두 여동생을 서울로 불렀기 때문이다. 갓 시집온 엄마는 졸지에 세명의 시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거기다 아버지는 바쁘다는 이유로 언제나 밤늦게 들어왔기에, 엄마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힘들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지. 당시 이혼은 생각도 못하는 시기였고, 그리고 바로 네가 생겼거든. 뱃속에 너를 품고 고향에 갈 수는 없었어."


엄마의 유일한 낙은 집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사이다를 먹는 것이었고, 집에 있기가 정말 힘든 날은 하염없이 동네를 걸어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나는 26살, 낯선 도시에서 부푼 배를 안고 거리를 헤매는 엄마를 떠올려보았다.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온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내가 결혼에 대해 생각할 때도 역시나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최근에 "메모리 코드, 고통의 근원을 없애는 하루 10분의 비밀(알렉산더 로이드 저)"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서 어떤 감정을 유발할만한 상황이 아닌데 뜬금없이 어떤 감정이 올라올 경우, 이는 무의식 속에 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알렉산더 로이드 작가의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자유를 즐기다가 '천천히 늦게' 결혼을 하라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혹시,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유아기까지 엄마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서 "결혼 = 숨 막히는 답답한 생활"이라는 공식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결혼은 자유를 앗아가는 답답한 생활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듯 싶다.


물론, 엄마의 고달픈 경험과 말 때문에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건(못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엄마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계시기에 현실적으로는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으셨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여서 마음속 깊은 곳에 집어넣고 계속해서 되새김질 한 당사자는 바로 나였다.


나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더 잘 공감하면서 받아들였다. 누가 결혼생활에 대한 힘듦을 토로하면, "역시"라는 말을 자주 했던 기억이 나는데, 나는 결혼에 대한 내 부정적인 믿음에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 꼭 해야만 하는 걸까? 엄마는 내가 아직 임자를 못 만나서 그렇다는데, 임자를 만난다면 결혼에 대한 내 마음이 바뀌게 될까?


그냥 결혼에 대한 내 마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상관없이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과 최선을 다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20대 때는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 같아서 부담스러웠고, 30대 때는 스트레스를 주는 원흉이었는데, 40대 그 누구도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나이가 되니, 이제야 결혼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친한 지인이 결혼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오랜만에 들려온 지인의 결혼 소식에 갑자기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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