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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Jun 06. 2022

시골집, 텃밭에 다녀오다

쉬러 갔다가 막노동(?)하고 오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부모님이 관리하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다. 부모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물도 주고, 밭도 갈면서 관리하셨고, 가실 때마다 상추나 오가피 등 각종 작물들을 가져오셨다. 워낙에 작은 텃밭이라서 딱 우리 가족과 주위 친한 지인 두세 분 정도 나눠줄 정도의 양만 나왔다.


5월의 어느 날, 부모님은 또다시 시골 텃밭에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극강의 집순이인 나는 작년 말 강릉 여행 이후,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기에, 잠깐의 흔들림으로 "같이 가볼까?"라는 말을 내뱉었고, 부모님은 이때다 싶었는지 "딱히 할 일은 없고, 가서 상추만 좀 따오면 될 거 같으니까, 바람도 쐴 겸 같이 가자." 라며 나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났다.


집에서 아침 8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차가 좀 막혔다. 우리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나를 이끌고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선산

마지막으로 왔을 때보다 산소가 더 늘어났지만, 관리가 정말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슬프고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다들 편안하게 쉬고 계시네.'라는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그냥 마음이 편안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몇몇 친척분들 산소를 방문한 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는 시골집으로 향했다.

왼쪽부터 오가피, 흑적 상추, 고추

잘 자라고 있는 상추와 고추를 보니 신기했다. 엄마와 나는 상추를 뽑고, 아버지는 뒷마당으로 가서 예전에 심어두었던 도라지를 살피셨다. 최근에 비가 오지 않아서 땅이 엄청 메말라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도라지 새싹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고 걱정하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근처에 있던 물조리에 물을 담아왔는데, 엄마가 그걸로는 힘들다며, 시골집 화장실 수도꼭지에 연결되어 있는 물 호수를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도르래처럼 감겨있던 호수를 풀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물조리로 앞마당에 있는 고추밭에 물을 뿌리며 여유를 즐겼다.


그러던 중,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시골집은 자잘한 문제들이 많았다. 전기도 잘 안 들어왔고, 가스 연결도 안 되어 있다. 그러니 수도라고 멀쩡했을까? 갑자기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나더니, 화장실에 연결한 수도꼭지가 터지면서 엄청난 물 분수가 화장실 문을 통해서 부엌 쪽으로 쏟아져 내린 것이다.


아버지가 급하게 들어가서 수돗물을 잠갔지만, 이미 시골집 부엌은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엄마, 아버지는 상추를 뽑아낸 텃밭에 부추도 심어야 했고, 도라지도 살펴야 했기에, 물바다가 된 시골집 청소는 내 몫이 되었다.


시골집 부엌은 철퍽철퍽 소리가 날 정도로 물이 고여있었고, 나는 수십 번 걸래를 짜고 나서야 간신히 청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물 호수를 더는 사용할 수 없었기에, 11리터짜리 물조리에 물을 담아서 엄마, 아버지한테 전달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갑자기 하게 된 막노동으로 급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자, 열심히, 정말 열심히 물지게(?)를 날랐다. 잠깐 바람 쐬러 따라 나온 길이 어쩌다 보니 힘쓰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부모님 말을 위로 삼아, 청소하고, 물 뿌리며, 열심히 돌아다녔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고 주위 사람들한테 말을 하곤 했는데, 손바닥만 해도 농사는 농사였는지, 부모님이 일 하시는 걸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날이후, 안 쓰던 근육을 갑작스럽게 사용한 대가로 한동안 오른쪽 팔을 사용할 때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는데, 나보다 배는 일하신 부모님은 평상시와 전혀 다름이 없는 걸 보면서, 진짜 운동해야겠다는 마음만 한 삼일 가진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만 확인했다.


하지만, 밭에서 딴 상추와 오가피로 싸 먹는 고기쌈은 정말 꿀맛이었다! 다시 가서 뜯어오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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