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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Jun 04. 2023

결혼도 안 한 내가 꿈속에서 전남편을 만났다

에세이와 소설 그 어디쯤

꿈을 꿨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폐허가 된 현장을 거닐고 있었다.

"이 집은 폭삭 무너졌네요."

누군가의 말에 나는 바로 그 집을 살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집이었다.

바로 전남편이 재혼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집.

"빨리 생존자가 있나 찾아봐."

누군가와 나는 열심히 잔해를 뒤졌다. 누군가가 말한다.

"이미 탈출했나 봐요. 여기 캡슐이 있었던 흔적은 있는데, 캡슐은 보이지 않아요."

그 비싼 캡슐을 구매해 놓다니, 역시 전남편이었다.

전남편의 부인과 아이는 캡슐을 통해 아무도 모르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된 듯 보였다.

"살아있으면 됐다."

나와 누군가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대피소로 보이는 공간.

전남편이 자신의 옆자리를 내게 내어줬다.

나는 전남편의 옆자리에 앉았다.

전남편이 나를 향해 자신의 다친 곳을 보여준다.

"나 여기 다친 거 같아."

나는 전남편의 상처를 꼼꼼히 살폈다.

"약  바르고, 조심히 다녀."

이제는 잔소리가 아닌 감정 없는 한마디였는데, 전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그런 전남편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와이프랑 아이는 안 찾아?"

전남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남편은 내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전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혼하기 전에 나와 나누는 대화인 듯했다.


"당신인 줄 알았어. 그 여자인지 정말 몰랐다고."

전남편은 당황해서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전남편이 말을 이었다.

"진짜 몰랐어. 믿어죠. 그 여자가 나를 속였다고.

그 여자가 준 물을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졌어.

나는 그 여자가 당신이라고 생각했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안은 거야."

나는 전남편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알아. 당신을 믿어."

나는 전남편을 믿었다. 전남편은 절대로 허튼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타고난 성향이 그랬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잖아. 잘된 일이야.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그 여자는 해줬잖아."

전남편은 울 듯한 표정으로 집을 나가는 나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이혼을 했다.


***


완전하게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정신이 몽롱했다.

절대 남한테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남자인데 오직 나한테만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전남편이 행복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전남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와이프와 아이를 찾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현실에서는 결혼을 한 적도 없는데, 꿈속에서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심지어 서사가 참...


나는 실제처럼 생생한 꿈을 꾸고 난 후에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한동안 사로잡히는데, 이번에는 진짜 내가 아이를 못 낳아서 이혼을 한 안타까운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건 무슨 간접 경험도 아니고,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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