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감과 정교하지 않은 터치, 그리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은 완벽하게 자유로워 보이는 한 사람!
나는 이 삼박자에 홀려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라울 뒤피 전시회를 예약했다.
"이번 주, 주말에 가야지!"
비록, 라울 뒤피란 화가를 그날 처음 알았지만, 예전부터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 같은 설렘을 가지고 주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주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전시회를 가지 못 하게 됐고, 나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전시회를 완벽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9월 초, 네이버에서 알람 하나가 떴다. 이게 뭐지 싶어서 들어갔다가 "아차"하고 말았다.
- 라울 뒤피, 전시회가 9일 남았습니다.-
"맞다! 전시회."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알람을 보는 순간, 예전에 느꼈던 설렘 대신에 귀찮음이 온몸을 감싸왔다.
5월의 따스한 봄날, 거리를 걷기만 해도 설레던 그날의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요 며칠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매일매일이 피곤한 상태였다. 주말에 전시회장을 간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래서 예약을 취소하려고 들어갔는데, 나는 아래의 이유 때문에 멈칫했다.
마감 10일 전에는 전액 환불이 안 된다는 사실과 왠지 모르게 나 자신한테 패배한 느낌.
솔직히 전액 환불 불가 문구에 멈칫했지만, 그 이유만이었다면 나는 취소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웃음기 하나 없는 "9월의 내가" 라울 뒤피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던 "5월의 나를" 이기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나는 피곤한 몸을 강제로 일으켜서 라울 뒤피 전시장으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은 왜 이렇게 역에서 멀리 있는 거야?! 를 외치며, 뜨거운 땡볕아래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고서야 도착한 전시장. 운이 좋았는지 들어서자마자 도슨트 투어가 시작되고 있어서, 혼자 보면은 알 수 없었을 많은 정보를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많이 피곤했지만, 라울 뒤피의 경쾌한 작품을 보면서 안 좋았던 감정이 서서히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라울 뒤피는 안 좋은 감정을 작품 속에 드러내기를 꺼려했던 화가였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데, 정말 라울 뒤피의 작품은 하나같이 밝고, 경쾌했으며, 보기에 편안했다. 특히, 막 그린듯한 가벼운 붓터치(?)는 정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는 투어의 마지막쯤에 광고판에서 나를 설레게 했던 라울 뒤피의 대표작 "전기의 요정"을 보게 됐는데, 여기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라울 뒤피의 전시회가 "더현대"에서도 하고 있다는 사실과 내가 본 포스터는 "더현대"에서 올린 것이라는 사실이었다.(⊙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