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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Oct 21. 2023

세 개의 손거울

단편소설

알람 소리와 함께 눈부신 빛 무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암막커튼을 치고 잔다는 걸 잊어버린 모양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한쪽 팔을 간신히 들어 올려서,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몇 년 전 은주가 사준 세 개의 손거울 중 하나였다.

- 뭐야. 눈이 퉁퉁 부었잖아.

나는 재빠르게 일어나서 방안 한편에 마련해 둔 미니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종류별로 마련된 마사지기 중 하나를 꺼내서 눈두덩을 문질렀다. 집에 사촌동생인 현주가 와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을 현주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오 분 정도 마사지를 하고, 다시 거울을 집어 들었다. 옅은 쌍꺼풀이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얼음 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으. 차가워. 어쩔 수 없지.

손끝이 얼얼해지기 시작할 때, 드디어 옅은 쌍꺼풀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일어난 지 10분 만에 드디어 방을 나섰다.

- 언니, 잘 잤어?

- 응. 너도 잘 잤어?

현주는 일어난 지 좀 됐는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 근데 언니, 언니 집에는 왜 전신 거울이 세 개나 있어?

- 다 선물 받은 거야.

- 세 개 다? 설마 같은 사람이 준 건 아니지?

- 같은 사람 맞아.

- 진짜? 그 사람, 이상한 사람 아니야? 무슨 선물로 전신 거울을 세 개나 줘.

- 그 이상한 사람이 바로 네 큰 이모란다. (현주의 큰 이모는 내 엄마다.)

- 큰 이모가 선물한 거야? 아이고, 머리야.

나는 현주의 말에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 언니, 나, 간다. 다음에 또 와도 되지?

- 당연하지.

지방에 사는 현주는 서울에 머물 곳이 필요했고, 나 역시 말벗이 필요했기에 현주의 방문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 맞다.

문 밖을 나서던 현주가 뭔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휙 뒤를 돌았다.

- 나 작은 방에 있던 손거울 하나 가져간다.

- 작은 방에 있는 손거울? 설마, 곰돌이 모양 말하는 거야?

- 응. 똑같은 모양이 세 개나 있던데. 그럼 언니, 다음에 봐.

- 뭐? 잠깐만.

현주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쌩하니 나가버렸다.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곰돌이 모양이라면 재작년 지영이가 선물해 준 손거울이었다. 하나는 가방 안에, 하나는 지갑 안에, 하나는 재킷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는, 세 개가 한 세트인 거울이었다. 그걸 가져가면 어떡하라고.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작은 방으로 뛰어갔다. 작은 방 책상 위에는 곰돌이 모양 손거울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미 나간 현주를 불러올 수도 없고,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정신없이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던 나는 고민 끝에, 서랍 맨 아래 고이 모셔둔 또 다른 손거울 세 개를 꺼내 들었다. 손거울 치고는 커서 들고 다닐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뭇잎 모양의 손거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 보였다. 나는 핑크색 중지갑을 꺼내서 손거울을 넣어보았다.

- 역시, 안 들어가네. 하아, 예전에 쓰던 장지갑이 어디 있지?

나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구석에 처박아둔 장지갑을 낑낑대며 꺼냈다. 핑크색 중지갑을 좋아하지만, 나뭇잎 모양의 거울을 가지고 다니려면 장지갑이 필요했다. 

나는 어제까지 입고 다니던 숏 재킷을 구석에 밀어 두고, 주머니가 큰 벙벙한 재킷을 꺼냈다. 그리고 장지갑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숄더백을 매고는, 출근길에 나섰다. 익숙했던 곰돌이 손거울이 그립긴 했지만, 두 개만 가지고 출근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재킷을 안 입거나, 지갑을 안 들고 어딘가에 갈 일이 생긴다면, 윽,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


출근 버스는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힘겹게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역시나 나뭇잎 모양의 손거울은 한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와야지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롭게 얼굴을 볼 수가 있는데, 어쩔 수 없지.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버티면서, 얼굴 가까이로 거울을 가져왔다. 그리고 눈곱은 끼지 않았는지, 화장은 번지는 않았는지, 머리세팅은 무너지지 않았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사람들 눈치가 살짝 보였지만, 다들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나는 편안하게 이리저리 돌려가며 거울을 봤다. 그러다 거울 속에서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 나는 소리 없는 신음을 내질렀다. 여자도 놀랐는지, 잠시 멈칫하더니, 재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여자는 찰나의 순간에 내 거울 속에서 마스카라가 번진 걸 발견했는지, 새끼손가락으로 열심히 눈 양옆을 문질렀다. 거울을 빌려주고 싶은 충동이 잠시 일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 서둘러 내 마스카라는 번지지 않았는지 살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자보다는 깔끔해 보였다. 내가 이래서 손거울을 가지고 다니는 걸 포기할 수가 없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복도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갖 거울이 보이는 건물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린다. 나는 내 손거울을 잠시 내려놓고, 전신 거울 앞에서 출근길 흐트러진 옷차림을 매만졌다. 벙벙한 차림새는 최근에 입고 다녔던 스타일이 아니라서 영 어색했지만, 나뭇잎 모양의 거울을 선물해 준, 호선은 예쁘다고 말했던 옷차림이었다. 나는 다시금 주머니 안에서 호선이 선물한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새삼스럽게 호선에게 고마웠다. 

출근 시간 2분 전,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 좋은 아침입니다.

- 어머, 스타일이 바뀌었네요? 심경의 변화?

- 아니요. 그냥 바꿔봤어요.

역시나 사람들 차림새에 관심이 많은 직원 중 한 명이 변한 내 옷차림에 관심을 갖는다.

- 어제까지만 해도 프릴이 나풀거리는 귀여운 룩으로 다니시더니. 혹 남자? 새로 사귄 남자가 지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대요?

- 아직 안 헤어졌어요.

- 그럼, 애인 취향이 변한 건가?

- 저 이런 옷도 많아요. 

때마침 친한 직원 중 한 명인 정희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살가운 정희의 인사에 내 곁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정희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는다. 그리고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다.

- 뭐야. 뭐야, 정희 씨, 머리 잘랐어요?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거야?

- 저 결혼한 지 3년째입니다.

정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나한테 관심을 보이던 직원은 이번에는 정희에게 쪼르르 다가가더니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 그럼 남편하고 싸운 건가.

정희한테는 미안했지만, 나는 한시름 놓은 채, 서둘러 업무를 시작했다.


***


- 다른 거울이네요.

점심을 먹고 치아 사이의 이물질을 확인하기 위해 꺼낸 손거울을 보고 정희가 말했다. 나는 나뭇잎 모양의 거울을 흘깃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이상해요?

- 뭐가요?

- 손거울이요.

- 거울이 이상할 게 뭐가 있어요? 거울은 다 그냥 거울이죠.

정희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역시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큰가? 곰돌이 거울을 들고 왔어야 했나. 하지만, 곰돌이는 두 개 밖에 없는데, 그냥 현주한테 가져오라고 연락할까?

- 거울 좀 빌려주세요.

한참 생각에 빠져있는데, 정희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지갑 안에 있는 거울을 꺼내서 건넸다.

- 확실히 크긴 크네요.

정희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커서 얼굴이 다 보이니까 좋아요. 저번 거울은 좀 작았잖아요.

정희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별로라고 했다면, 나는 오늘 저녁에 있는 친구들 모임을 취소할 생각이었다. 괜찮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


-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 응. 너도?

- 나야 똑같지 뭐.

오랜만에 학원 친구인 은명과 민을 만났다. 거의 일 년만의 만남이었다.

- 왜 다들 그대로야. 늙지를 않아.

민의 말에 은명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 우리가 작년 이맘때쯤 만났었나? 에이, 일 년 사이에 늙으면 얼마나 늙겠어. 

- 그건 그러네.

우리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수다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종업원이 와서 이제 곧 마감시간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을 정도였다.

-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이제 집에 가야겠다.

은명이 시계를 보고는 주섬주섬 옷 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재빠르게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냈다. 진즉에 봤어야 했는데, 친한 사람들이라서 그만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 나도 빌려줘.

민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민에게 거울을 넘겼다. 민은 거울을 보며, 지워진 화장을 수정했다. 

- 손거울이 커서 좋네.

민의 말에 입 꼬리가 올라간다. 들고 다니기 조금 불편해도 역시 큰 손거울이 좋긴 좋구나. 민은 손거울을 이리저리 흔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손짓이 큰 민이라서 거울이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이러다 큰일 날 거 같은데. 나는 거울을 달라는 표정으로 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흔들리던 거울이 내 손과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쨍그랑’, 바닥과 부딪혀 깨지는 거울이 사진처럼 한 장면씩 눈동자 안으로 들어온다.

- 안 돼!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민은 내 비명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미안해. 어떡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고, 두 손은 잘게 흔들렸다. 민은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거울 조각을 치웠다. 다행히 반으로만 쪼개져서 수습은 쉬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산산조각 나있었다. 이제 다른 손거울도 없는데, 어떡해.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아찔함에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허옇게 질린 내 모습에 은명과 민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 많이 놀랐어?

은명과 민은 내가 거울이 깨지는 소리에 놀랐다고 생각한 듯했다. 특히, 민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옅은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명과 민이 나를 따라서 일어났다. 

- 나 먼저 갈게.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내 말에 민이 나의 손을 다급히 잡았다.

- 너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 

- 그만 가야 할 거 같아. 

나는 민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고, 가방을 집에 들었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민이 다시 한번 나를 붙잡았다.

- 가기 전에 손거울 사가지고 가. 내가 잘못해서 깬 거니까 하나 사줄게.

나는 민의 말에 멈칫했다. 무슨 말이지? 나는 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민의 어색하지만, 다정한 미소를 보는 순간, 그만 배시시 웃고 말았다.

- 정말?

- 그럼, 내가 잘못해서 깬 거잖아. 어디 보자. 저기에 액세서리 가게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두려웠는데, 민의 말 한마디에 나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민의 손을 뿌리쳤던 일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민은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오히려 거울을 사주겠다고 했다. 새삼스럽게 민이 다르게 보였다.

- 네가 골라봐.

- 내가?

- 응. 네가 쓸 거잖아.

나는 수많은 손거울 앞에서 머뭇거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울을 골라본 적이 없었다.

- 왜? 마음에 드는 거울이 없어?

은명의 물음에 그냥 “다 예뻐서”라고 대답했지만, 솔직히 나는 거울이 예쁜지 안 예쁜지 판단조차 못하고 있었다. 계속 머뭇거리니, “그럼 이건 어때” 라며 은명이 손거울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왠지 너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

가죽으로 된 타원형 모양의 거울이었다. 지금까지 눈길 한번 준 적 없는 스타일이었지만, 나랑 어울릴 거 같다는 은명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에 민이 냉큼 거울을 가져갔다.

- 그럼 이 걸로 사줄게. 더 필요한 거 더 없어? 

민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똑같은 거울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솔직히 민이 말을 안 해도 두 개를 더 내밀 생각이었다. 나는 무조건 세 개가 필요했다.

- 뭐야. 오늘처럼 깨질 걸 대비하는 거야?

민은 호탕하게 웃은 후, 같은 모양의 거울 세 개를 결제했다.

- 고마워. 잘 쓸게.

- 고맙기는. 내가 깨서 사주는 건데. 하여튼, 잘 써.

나는 가죽으로 된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정도 사이즈면, 다시 중지갑을 꺼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핑크색 하고는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고, 어쩌지. 나는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죽 거울에 어울리는 지갑을 검색했다. 그리고 어울리는 옷과 가방도 찾았다. 장바구니 안으로 물품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옷 방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어제 선물 받은 손거울을 꺼냈다.

- 역시, 안 어울려.

지금 내게는 가죽 거울과 어울리는 옷과 가방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옷을 골라 입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제 산 옷과 가방은 아무리 빨라도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텐데, 나는 서둘러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지각이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방을 나섰다. 하지만, “역시 안 어울려.”나는 거실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새로운 손거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차림새를 목격하고는, 다시 옷 방으로 향했다.

- 뭘 입고가지.

나는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을 전부 꺼냈다. 그리고 하나씩 걸쳐보았다. “어울리는 옷이 하나도 없잖아.”울고 싶었다. 시계를 흘끗 쳐다보니 8시 20분이다. 앞으로 10분 안에 나가지 않으면 택시를 타도 지각이었다. 나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잘 안 입는 옷을 넣어둔 서랍도 헤집기 시작했다.

- 이것도 아니야, 이것도 아니잖아, 이건 더 이상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고 느낄 때쯤, 생소한 조끼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뭐지? 나는 이런 옷을 산 기억이 없는데. 설마, 현주 옷인가.

나는 서둘러 입던 옷을 다 벗어버리고 흰 티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끼와 맞춰 보았다.

- 이거다!

드디어 손거울과 맞는 옷을 찾았다. 나는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신발장 앞 전신거울 앞에서 나는 또다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 가방이 안 어울리잖아.

한쪽 눈에 눈물이 맺힌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무조건 지각이었다. 하지만, 전신거울 앞에 선 내 발걸음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정희 씨, 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회사에 못 갈 것 같아요. 팀장님께는 따로 말씀드릴게요. 아니요. 심하지는 않아요. 죄송한데, 제가 오늘까지 보고해야 할 자료가 하나 있는데. 네. 네. 팀장님께 전달만 부탁드려요. 네. 네. 감사합니다.

팀장 전화까지 마무리한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 걸어서 오 분 거리에 가방을 파는 매장이 하나 있었다. 어차피 가방은 여러 개 사두면 좋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내일 들고 갈 가방 하나를 사 올 생각이다.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가죽 손거울과 어울리는 가방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


현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집을 초토화시켜 놨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 여자들은 다 그래.

- 우리 집에도 여자가 셋이나 있어.

- 네 누나들은 옷이 많잖아.

- 지금 네 옷은 많지 않다는 거야?

현태는 옷 방을 가득 채운 옷가지로 눈길을 돌렸다. 

- 입을 만한 옷이 없잖아.

남자친구인 현태가 가방을 사러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에 집에 들른 모양이었다. 열 시 출근인 현태는 가끔 반찬 같은 걸 들고 우리 집에 들렀다가 출근하고는 했다. 마침 오늘 현태가 집에 왔고, 난장판이 된 집을 보고 도둑이 들었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연락하기도 전에 경찰에 신고를 해버렸다 새로 산 가방을 들고 룰루랄라 집에 온 나는 활짝 열린 현관문에 웅성거리는 소리, 그리고 다급한 현태의 목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모든 사정을 알게 된 후, 벌게진 얼굴로 현태와 함께 경찰관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 지금 네 눈에는 저것들이 옷이 아니고 뭔데.

- 내 취향이 아니야.

현태가 잠시 숨을 고르는 게 느껴진다. 

- 뭐가 문제야.

- 그냥 취향이 바뀌었다고.

- 갑자기 왜? 설마.

잠시 말을 멈춘 현태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 줘봐.

- 뭘.

- 네 손거울.

내 몸이 움찔한다. 

- 손거울은 왜?

나는 한껏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 줘 보라고.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쭈뼛거리며 지갑 안에 넣어둔 가죽으로 된 거울을 꺼내서 건넸다. 거울을 휙 낚아채서 가져간 현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 바뀌었네.

- 어쩌다 보니까.

현태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뭔가 결심을 한 듯, 말을 잇는다.

- 나 지금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진지하게 들어줘.

잔소리를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입을 떼는 현태를 보고 있으려니,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 우리 상담 좀 받아보자.

- 무슨 상담?

- 심리 상담 같은 거. 요새 사람들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

현태의 말에 갑자기 확 열이 뻗쳐올랐다.

- 너, 지금 내가 미쳤다는 거야?!

- 그 말이 아니잖아.

- 아니긴 뭐가 아닌데, 지금 내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잖아.

나는 내게 다가오는 현태를 밀치며, 그동안 참았던 분노를 터트렸다.

- 그러니까 네가 사주면 되잖아. 그럼 아무 문제없는데. 네가 사주면, 하나가 깨져도 이렇게 전전긍긍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잖아.

악을 쓰며 소리치는 나를 현태가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 네가 고르라고. 그럼 사준다고.

나보고 고르라고? 그럴 수 있었으면, 벌써 내 돈으로 수 백 개는 사서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까 부탁하는 건데, 현태는 그럴 때마다 번번이 거절했다. 내가 악을 쓰며 분노를 터트리는 이 순간에도 현태는 거절한다. 순식간에 분노가 사그라졌다.

- 현태야. 이제 그만하자.

현태가 내 손을 잡는다.

- 내가 사줄게. 네가 고르는 게 힘들면 옆에서 도와줄게.

나는 현태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그리고 단호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가, 현태야. 그리고 우리 집에 이제 그만 와.

현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너 지금 하는 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현태의 말에 순간 흔들렸지만,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 후회 안 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겨우 몇 천 원짜리 거울도 못 사주는 남자랑 어떻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어.

현태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 거짓말. 그게 어째서 나를 사랑해서야. 너는 끝까지 이기적이야.

현태가 겉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현태는 잠시 신발장 옆 전신거울을 바라보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옅은 미소와 함께 마지막 말을 건넸다.

- 너는 거울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건 네가 할 몫이고.

현태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


현태와 연락을 안 한지도 벌써 이 주가 넘어간다. 나는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현태를 만난 건, 재작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가지고 있던 물방울 모양 거울 하나를 잃어버려서 패닉에 빠져있던 상태였다. 마침 친구인 지영이가 내 생일 즈음에 해외에 나가있을 거 같다며, 미리 선물을 주고 싶은데 원하는 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면, 나는 꽤 오랫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 저기요. 이거 그쪽 건가요?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그리고 뭔가를 내미는데, 내 손거울이었다. 여름에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힘들어서 나름 신경을 썼는데도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손거울을 뺏듯이 낚아챘다.

- 미쳤나 봐.

나는 앞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거울이 깨지지 않았는지를 살폈다. 남자가 내게 물었다.

- 이름이 꾸미였나요?

- 네?

- 그 캐릭터 이름이요.

나는 그제야 손거울의 뒷면을 바라보았다. 

- 꾸미요?

- 뭐, 모를 수도 있죠.

- 아, 네. 손거울 주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를 뜨려 했지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남자의 표정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 제게 할 말 있으세요?

남자는 큼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내게 물었다.

- 혹시 저 학원 다니지 않으세요?

나는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영어 학원이었다.

- 맞아요. 다니고 있어요.

- 저 기억 안 나세요. 최근에 계속 짝꿍이었는데.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렸다. 최근에 물방울 손거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옆에 누가 앉는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얼핏 어떤 남자랑 짝이 되어 영어 회화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 아! 기억나요. 내 옆에 앉았던 분.

- 드디어 기억해 주시는 건가요?

남자는 호탕하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고 쳐다보는데,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이 현태입니다. 친하게 지내요. 우리.

곰돌이 거울 때문에 만난 현태는 곰돌이 거울과 함께 떠나갔다.


***


- 언니. 오랜만.

- 응. 왔어.

내일 또 다른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현주가 올라왔다.

- 어? 전신거울 하나 없어졌네. 신발장 옆에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맞지?

- 치웠어.

- 잘했네. 세 개는 좀 그렇지.

- 큰 이모한테는 말하지 마. 또 사 올 라.

현태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 후, 혼자 맥주를 마시던 나는 갑자기 올라오는 취기에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졌는데, 그중 하나가 신발장 옆에 있는 거울을 향해 날아갔다. 현태와 헤어지고도 울지 않았던 나였는데, 나는 깨진 거울 앞에서 밤새 통곡하며 울었다.

- 근데, 언니. 큰 이모가 그러는데, 언니 손거울 세 개씩 가지고 다녀야 한다며? 내가 하나 가져왔다고 하니까 언니가 화내지 않았느냐고 걱정하던데, 괜찮아?

현주가 내 눈치를 슬쩍 보며, 말을 흐린다.

- 괜찮아.

다 지난 일이다. 이제 내게는 가죽 거울이 있었다.

- 그래서 다시 가져왔어. 자.

현주가 내 앞에 곰돌이 거울을 꺼내놓았다.

- 나 진짜 괜찮아. 그냥 가져.

- 두 개밖에 없잖아. 정말 괜찮아?

- 응. 이제 필요 없어. 다 가져가도 돼.

두 개만 남은 거울은 필요 없었다. 지금 집에는 한두 개만 있는 손거울이 차고 넘쳤다. 

- 아, 현주야, 가죽 거울은 가져가면 안 돼.

나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 걱정 마. 나는 거울 필요 없어.

- 왜 필요 없어? 거울 없이 어떻게 살아?

- 왜 못살아. 사방천지가 다 거울인데. 필요하면 그때그때 보면 되지

- 없을 때도 있잖아.

현주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 냉장고로 향했다.

-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 근데 언니, 김치찌개 다 먹었어?

- 김치찌개?

- 응. 현태 오빠 김치찌개.

현태는 요리를 좋아했고, 특히 김치찌개를 끝내주게 잘했다. 현태의 김치찌개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 나 현태랑 헤어졌어.

- 뭐?

현주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표정에서 뭘 읽었는지 곧바로 “헤어질 수도 있지. 그런데 좀 아쉽네. 김치찌개, 맛있었는데.”라며 쩝 입맛을 다셨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현태의 김치찌개가 생각나서 힘들었는데, 나는 비싼 거 사 줄 테니 나가자며, 현주를 잡아끌었다. 현주가 마지못해 끌려 나온다.


***


- 윤정아, 너무 예쁘다.

- 고마워. 언니는 현태 오빠랑 언제 결혼해?

현주가 윤정의 옆구리를 푹 찌르는 것이 보였다.

- 윤정아, 나 현태랑 헤어졌어.

- 응? 아, 미안해. 몰랐어.

- 뭐가 미안해. 모르는 게 당연하지. 헤어진 지 얼마 안 됐거든. 아 맞다. 둘 다 큰 이모한테는 비밀이야. 엄마 알면 또 선보라고 난리다.

- 알았어. 언니, 남편 친구 중에 괜찮은 사람들 많아. 잘 살펴봐. 내가 소개해줄게. 현주야, 너도.

- 나는 됐다. 아직 결혼할 마음도 없고.

- 너 작은 이모가 우리 엄마 얼마나 부러워하는 줄 알아?

- 엄마가 부러워하는 거지, 내가 부러운 건 아닙니다.

나는 현주와 윤정의 대화를 잠시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엄마와 이모들이 올 텐데, 그럼 또 언제 결혼하느냐, 왜 남자친구는 안 왔느냐 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하실 게 분명했다.

- 윤정아, 결혼식 잘하고, 현주는 끝나고 약속 있다고 했지? 이따가 집에서 봐.

나는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구석진 자리에 몰래 앉아 있다가 가족사진만 조용히 찍고는 엄마와 이모가 정신없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도망쳤다.

- 하아, 정신없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결혼식장 지하에 있는 상가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옷이나 가방이 있으면 사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가죽 손거울과 어울리는 옷이 턱없이 부족해서, 기회만 있으면 하나씩 사들이는 중이다. 

- 귀걸이나 하나 사갈까?

마침 액세서리 상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상점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종류의 손거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곰돌이 손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 꾸미 손거울. 그래 꾸미라고 했었지. 

현태가 떠올랐다. 현태는 요리도 잘했지만, 다정한 사람이었다. 예전에 한번 곰돌이 거울을 현태의 집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나는 온 집안을 다 헤집으며 거울을 찾아 헤맸다. 현태는 본인의 집이 엉망진창으로 변해 가는데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엄마는 거울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끔찍하다고 했는데, 현태는 안타까웠다고 말해줬다. 소파 사이에 껴 있는 곰돌이 거울을 발견하고, 정신을 차린 내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을 때, 현태는 그저 찾아서 다행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거울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힘들다는 내 말에 현태는 다정하게 안아줬었다. 갑자기 현태가 보고 싶어졌다.

- 이 거울이 마음에 드세요?

그 순간, 낯익은 남자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현태?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하지만, 눈앞에는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옅은 한숨을 쉬며, 남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 윤정이 언니 맞죠?

윤정? 나는 사촌 동생 이름에 걸음을 멈췄다.

- 윤정이 아세요?

- 네. 윤정이 남편 친구입니다. 아까 식장에서 봤었죠?

그러고 보니 동생이 남편 친구들이라고 몇몇의 사람들을 소개해준 기억이 난다. 그중 한 명인 듯했다.

- 죄송해요.

- 괜찮습니다. 식장 안이 정신없었죠. 

안 그래도 우울한 기분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제부의 친구였다. 매너 없이 굴 수는 없었기에 최대한 친절한 미소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남자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가시려고요? 뭐 사러 들어오신 거 아니었어요?

-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요. 그럼 이만.

- 저, 이 손거울 선물로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손거울? 손거울을 선물로 준다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도 사주지 않았던 손거울이었다. 그런데 딱 한번, 그것도 스쳐 지나가듯이 본 남자가 내게 손거울을 사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손거울인데, 현태는 왜?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빨리 현태에게 전화해서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의 다음 말에 내 화는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 이 손거울을 보는 순간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 저랑요?

- 네. 왠지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저 아무 여자한테 이러는 사람 아닙니다.

- 왜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현태는 사주지 못한 손거울을 이 남자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줄 수 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 그야,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진우입니다. 서 진우. 제 이름.

나는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손거울을 바라보았다. 아무 모양도 없는 심플한 스타일의 흰색 손거울. 남자가 손거울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남자가 내민 손거울을 받아 들었다. 남자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현태와 비슷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순간, 귓가에 현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원하는 거울로 사줄게.” 깨진 전신 거울 앞에서 통곡하고 울었던 그날 밤, 나는 다시는 현관 앞 전신 거울은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받지 않기 위해 노력도 했다. 엄마의 거울은 이겨냈다. 어쩌면 손거울도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를 위해 언제든지 손거울을 사다 줄 수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유혹에서 망설이고 있으려니, 진우가 말을 꺼냈다.

- 흰색 손거울이 마음에 안 들면, 원하는 손거울로 골라보세요.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 아니요. 마음에 들어요. 흰색 손거울. 그런데 사주실 거면 같은 걸로 세 개 사주시면 안 될까요?

진우가 환하게 웃었다.

- 그럼요. 얼마든지요.

나는 진우가 내미는 세 개의 흰색 손거울을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직 내게는 가죽 손거울이 있었다. 나는 진우라는 남자가 아닌, 그저 손거울을 받았을 뿐이다. 진우가 내게 물었다.

-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커피 한 잔 할까요? 근처에 맛있는 집 알고 있는데,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나는 진우에게 이끌려 내가 좋아할 거라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나는 진우가 사주는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쌓여있던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손거울을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시는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왠지 이 커피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커피 정말 맛있어요.

진우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나도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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