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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r 27. 2022

70대 부모님과의 여행은 짧을수록 좋다(?)

강릉 여행기

작년에 우리 가족은 코로나로 야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거기다 작년을 기점으로 부모님 모두 칠십 대가 되셨기에 더욱더 몸을 사렸다. 


다행히 셋다 MBTI가 I였기에(엄마는 ISTP, 나는 INFJ, 아버지는 귀찮다고 안 하셨지만, 백퍼 I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솔직히 코로나 전과 후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작년은 엄마의 칠순이었기에,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1박 2일 여행을 생각했는데, 코로나도 점점 심해지고, 특히 두 분이 밖에서 자고 오는 걸 질색팔색 해서 당일치기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해산물이어서 바닷가를 선택했다. 


정말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 코스는 KTX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 ⟹ 강릉에서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바닷가 뷰가 맛집인 해산물 식당으로 go go ⟹  바닷가 산책 ⟹ 안목해변에서 커피 한잔 마시기 ⟹ 집으로 이동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한 코스였지만, 솔직히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엄마한테 욕먹을 각오하고 쓴 글) 모. 두. 를 위해서 이동 거리를 최소화했다.


횟집에서 두 시간을 배 터지게 먹고, 안목해변을 잠시 걸었다.


11월 겨울바람이 생각보다 차지 않았다. 오랜만에 나들이라서 그런지 엄마,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해변가를 폴짝폴짝 뛰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엄마, 아버지보다 내가 더 들떠있었다. 매일 사무실 ⟹ 집만 반복하는 생활을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도시를 떠난 것이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하. 지. 만, 산책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릉항 붉은 등대까지 왕복하고는 셋다 체력이 고갈된 것이다. (내 체력이 가장 먼저 고갈됐다.)


그래서 멀리 위치한 가려고 했던 카페를 뒤로하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카페 2층에서 아버지와 나는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멍 때리고, 아무것도 마시기 싫다는 엄마는 멍하니 졸린 눈만 껌벅껌벅거렸다.


집 떠난 지 5~6시간 만에 셋 다 정신을 놓은 것이다.


엄마가 물었다. 

"기차 몇 시 출발이야?"

"앞으로 두 시간 더 있어야 해."


나는 엄마의 표정에서 "젠. 장. 할"이란 세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기에, 근처 특산물이라도 사러 가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힘들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몇 시간을 카페에 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그리고 벤치에 셋이 쪼르르 앉아서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았다. 


마침 요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아버지와 나는 요트를 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후, 엄마가 말했다. "시간 다 됐다. 가자."


다시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엄마, 아버지는 그대로 등을 기대고 누우셨다. 


잠깐의 나들이는 정말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음식은 맛났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복작거리지도 않고. 하지만, 한나절 여행도 무리였다. 다음부터는 반나절 여행 계획을 잡아야 할 듯하다.


하루도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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