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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r 27. 2022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역할이 바뀌다.

몇 년 전 가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눈이 안 좋다고 병원에 가셨던 엄마가 어디를 다친 것처럼 절뚝이며 들어오셨다. 나는 놀라서 무슨 일 이냐고 물었고,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엄마는 저리 비키라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살폈고, 엄마의 얼굴은 어디에 쓸린 것처럼 상처가 나 있었다.


“무슨 일인데. 이 상처는 뭐야.”


엄마는 왜 이렇게 귀찮게 묻느냐며 짜증을 내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끝까지 따라가서 엄마에게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계속된 질문에 엄마가 드디어 답했다.

“병원에서 나오다가 갑자기 눈앞이 안 보이잖아. 그래서 잠깐 쓰러졌었나 봐.”


뭐!!!!!!


나는 말 그대로 깜짝 놀라서 입만 짝 벌리고 있었다. 엄마가 말을 이었다.


“병원 앞 잔디에서 잠깐 의식을 잃었나 봐.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몰려들잖아. 그래서 깼는데, 얼굴이 좀 쓰리더라고. 주위 사람 말로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는데, 잔디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네.”


나는 침대에 누우려는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병원. 갑자기 쓰러진 거면 무슨 일 있는 거잖아. 큰일 날 수 있으니깐 병원 가자고.”

“지금 병원 갔다 왔는데 무슨 병원이야. 힘드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방에서 나가.”


하지만, 나는 엄마의 짜증에도 굴하지 않고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억지로 병원에 데려갔다. 최근에 갑상선 쪽이 아프다고 계속 말을 했기에, 우선 갑상선 초음파를 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진료를 받았다. 다행히 나쁜 결과는 아니었지만,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큰 병원에 예약을 하고 검진을 받으러 갔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 말이 엄마의 한쪽 눈에 이상이 생겼으니, 당장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그냥 두면 실명할 수 있다는 말에 엄마는 그날 바로 입원했고, 며칠 후 수술대에 올랐다.


부모님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안다.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나는 왜 병원 가자는 말은 부모가 자식한테만 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을까? 그즈음에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동생을 억지로 데리고 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는 우리의 보호자였고, 울타리였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무너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부모님의 울타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부모님이 어린아이처럼 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70대가 되신 부모님은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비는 부분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텔레비전이 잘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리모컨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두 분은 나오지 않는 TV를 보며 고칠 생각도 못하고, 내가 퇴근해서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TV도 못 보고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면 될 걸 내가 야근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구박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두 분은 사소한 문제 하나 해결하기 어려워하신다.


나는 어느덧 두 분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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