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다서영 Oct 10. 2022

그럼 우리 가게 오지 마세요.

동네 채소가게 아저씨

올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가 씩씩 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화가 났어요?"

"동네 사거리에 있는 채소가게 알지?"

"응."

"다시는 거기 가지 말아야겠어."

"왜요?"

"원래 불친절한 줄 알았지만, 손님들이 다 어르신인데 어디다 대고 소리를 벅벅 질러." (순화한 표현)

"뭐라고 했는데요?"

"어떤 아주머니가 뭘 물어보는데, 물어도 못 봐? 마음에 안 들면 오지 말라고, 손도 대지 말라고. 아주 그냥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

"거기 얼마 못 가겠다. 손님한테 소리 지르는 건 좀 너무하네."

"안 돼. 거긴 안 돼."


엄마는 진절머리가 난 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 그 채소가게를 이용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며칠 전, 장을 보고 오신 엄마가 일부러 대파를 안 사 오셨다는 말을 하셨다.


"한꺼번에 사 오지."

"대파가 좀 안 좋더라고. 대파는 다른 곳에서 사 올 거야."

"어디요?"

"동네 사거리 채소가게 있잖아. 거기가 좋거든."

".....??? 설마 엄마가 다시는 안 간다던 그 채소가게요?"

"응. 거기가 채소가 좋아."


그리고 엄마는 그렇게 질색팔색을 하던 채소가게로 가서 대파를 사 오셨다. 확실히 엄마가 사 온 채소는 다른 가게 채소보다 싱싱했다. 엄마는 한번 좋은 채소를 봤기에 다른 곳에서 사 오는 것이 가격 대비 아깝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았다. 아무리 채소가게 청년이 싸가지(?) 없어도 말 섞지 않고 그냥 물건만 사 오면 된다며 나름 합리화도 하신 듯했다.


며칠 후, 나는 채소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평상시에는 신경 쓰지 않고 지나다녔는데, 엄마의 일이 있고 나서인지 나도 모르게 채소가게에 눈길이 갔다. 가판장처럼 펼쳐놓은 채소가게에는 어르신들이 꽤나 많았다. 장사가 꽤나 잘 되고 있었다. 나는 흘끔흘끔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가게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가게 아저씨가 내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우리 가게 오지 마세요. 안 오시면 되잖아요."


아저씨는 어떤 어르신 한 분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어르신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아저씨를 향해 뭐라 뭐라 화를 내고 계셨다. 하지만, 가게 안에 손님들은 두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본인이 살 채소만 열심히 고르고 계셨다. 그분들의 모습에서 엄마가 겹쳐 보였다. 


지금 화를 내고 계신 어르신도 한동안은 이 채소가게를 찾지 않겠지? 하지만, 몇 개월 후에 조심스럽게 다시 다니기 시작하겠지?


확실히 이 가게가 다른 가게보다 채소가 싱싱하니까.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인성이 나쁜 사람도 능력만 있으면 괜찮은 건가? 언젠가 TV에서 갑질로 경질됐던 사람이 얼마 뒤 바로 복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사람을 왜 복직시켰느냐는 기자의 말에 회사 담당자가 이렇게 대답한 걸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다시 불렀습니다."


심각한 갑질로 회사 이미지까지 안 좋게 만든 사람인데,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데려올 정도로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거짓말. 나는 기사를 보면서, 분명히 윗사람과의 어떤 커미션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을 향해 오지 말라며 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는 채소가게 아저씨를 보면서, 그리고 그런 소리에 부르르 화를 냈다가도 다시 그 채소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보면서, 능력만 있으면 인성은 개차반(?)이어도 성공할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씁쓸해지는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주는 생일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