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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Sep 27. 2022

엄마가 주는 생일선물

9월 어느 날, 또다시 내가 태어난 날이 돌아왔다. 나는 내게 주는 선물로 휴가를 선택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온종일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솔직히 직장 내에 겹겹이 쌓여있는 쓸데없는 감정 속에서 생일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같이 있기만 했는데도 힘든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불편한 공간이 있는데, 내게는 사무실이 그렇다. (아닌가,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 아무도 없는 주말, 사무실에 홀로 앉아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던데,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생일날은 가장 편한 장소에 있고 싶었다. 


생일날 나의 스케줄은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된 드라마를 보(모범 형사 시즌2를 우연히 보고 정주행 중이다.) 온종일 뒹굴뒹굴 침대에서 굴러다닐 예정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엄마가 어디 좀 가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랑 나가자."

"안 가요."

요즘 운동시킨다고 틈만 나면 어디든 데리고 나가려고 해서 오늘도 뒷산 한 바퀴 돌자는 건 줄 알고 단칼에 거절했다. 평상시도 잘 안 나가지만, 오늘만큼은 진심으로 아무 데도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디인 줄 알고 안가?"

"산책 가자는 거 아니야? 오늘은 안 갈래요."

"산책 가는 거 아니야."

"그럼 생일이라고 설마 옷 사주려고? 됐어. 나 옷 필요 없어요."

가끔 생일 선물로 옷을 사주신 적이 있어서, 괜찮다고 말했는데, 옷 사주려는 것도 아니란다.

"그럼 왜?"

"그냥 잔말 말고 따라 나와."

"아니, 어디 가는 줄은 알아야죠. 준비하고 나가기 진짜 귀찮은데."

"세수도 안 하고 가도 돼."

"사람 만나는 거 아니야? 진짜 세수도 안 하고 나가도 된다고요?"

엄마는 잠시 멈칫하더니, "..... 세수는 하고 나가자."라고 말했다. 그럼 확실히 산책은 아닌 건데.

"그러니까 어디?"


결국, 엄마는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끌고 나왔다. 근데 가는 길이 영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 가는지 알 거 같은데. 설마, 아니지?"

"약해가지고 맨날 비실비실 하니까 약 좀 지어먹으라고 데리고 간다. 생일 선물로 해주는 거야."

"한의원 가는 거 맞네. 차라리 돈으로 주지."

"돈으로 주면, 네가 해 먹어?"

"아니요. 절대 안 하지."

"선물이야, 생일 선물. 선물은 주고 싶은 사람 마음 아니야?"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마지못해서 끌려갔다.


그렇게 자주 다니던 한의원 의사와 반가운 인사를 한 후, 몇십 분에 걸친 긴 상담을 받고, 약을 지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적게 먹으며 그것조차 제대로 소화도 못 시키고, 운동도 제대로 안 해서 매일 빌빌거린다며, 열성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진짜 제대로 된 소식좌를 엄마가 봐야 하는데, 나는 그래도 가뿐히 피자 2조각은 먹을 수 있다고요! (돌 던지기 금지. 타고나기를 소화 기능이 약하다고 했어요.)


(사담으로 내가 이 한의사분을 뵌 지 한 15년은 된 거 같은데, 이 분은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 없다. 외모나 말투나 행동이나 15년 전하고 똑같아서 놀라울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간 게 아마 5년 전인가, 그때보다 흰머리가 좀 많이 보인다는 것 말고는 달라지지 않은 외모에 대충이 없는 진료, 그리고 환자의 건강을 위한 조언까지, 예전 진료 기록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말해주셔서 중간중간 나도 잊어버린 옛 기억에 화들짝 놀라고는 했다.)


"녹용은 넣지 말라니까."

"하는 김에 다 해야지. 그리고 내가 언제까지 너한테 이런 선물을 하겠어. 해 줄 수 있을 때 그냥 받아."


언제까지?


엄마의 말에 감사히 받긴 했는데, 언제까지라는 말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다. 


엄마, 앞으로 10년, 아니 20년 후에도 생일 선물해줘요. 앞으로 군말하지 않고 주는 건 다 감사히 받을게요. 그리고 약 잘 챙겨 먹고 더는 아프다는 소리 안 할게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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