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이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을 텐데, 몇 년 동안 제사나 명절에 친척들이 오지 않으면서, 하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신 듯하다.
근처에 사는 사촌 동생만 빠짐없이 참석했던 명절 차례였다. 아버지는 사촌 동생에게 앞으로는 제사 때만 참석하라고 했다. 솔직히 제사 때 참석하지 않아도 아버지는 별말씀 안 하실 것이다.
아들조차 제사나 명절에 오지 않은지 거의 6~7년이 넘어가는데, 어떻게 조카에게 반드시 참석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하지만, 남동생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아서, 최근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남동생이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나중에 남동생과 관련된 썰을 풀 수도 있는데, 남동생은 나에게 평범한 사람이면 알지 못했을 많은 일을 경험시켜 준 장본인이다. 나는 남동생 때문에 인생의 최악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지 모르겠다. 한 때는 그 아이 이름만 떠올려도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지만, 아직도 남동생을 떠올릴 때면 예민한 위가 사르르 아파온다.
남동생은 우리 가족에게 세상은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신이 내려준 사람인 것만 같다. 그 아이를 통해서 평범하지 않은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우리 가족은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내성이 생겼다. 특히, 엄마가 많이 단련되셨다.
그래서 남동생과는 연을 끊고 산지 오래됐고, 여동생은 지금 외국에서 살고 있기에 쉽게 한국에 들어올 수 없어서, 우리 집은 명절이나 제사 때 엄마, 아버지, 나 그리고 사촌 동생 넷이서 제사상을 차렸다. 코로나 전에는 친척분들이 가끔 오셨는데, 코로나로 서로 조심하면서, 명절날도 넷이서 보내게 되었다. 넷이서 보내는 차례상이라서 그런가, 엄마가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의미도 찾지 못하겠고, 음식을 해도 남아 돌아서 많이 버리고, 그렇게 엄마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셨고, 올 추석부터는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추석 며칠 전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부모님은 신경 쓰이셨던 것 같다. 괜스레 추석 당일은 뭘 하면 좋을까 고민도 하시고,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지인분들 이야기도 하면서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노력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평생을 지내던 차례였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다가 온 차례상 없는 첫 명절 아침.
아침 6시면 보글보글 국 끊는 소리와 쿵쾅거리는 제기 놓는 소리에 잠이 깨고는 했는데, 나는 오전 10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평상시 휴일과 다름없었다. 부모님도 딱히 다른 날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일날이 되니까 마음을 내려놓으셨는지 얼굴이 더 좋아 보였다.
그래도 송편과 토란국은 먹어야 한다고 해서, 점심에 갈비와 토란국, 그리고 송편을 차려서 맛나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뒷산으로 한 시간 정도 산책도 다녀왔다. 산책을 갔다 온 후에는 선물로 들어온 멜론을 먹으며 다 같이 TV를 봤다. 명절날 점심때만 되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던 엄마였는데, 처음으로 온종일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나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례상이 없는 명절을 보낸 적이 없었기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 찜찜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마주한 엄마의 생기 있는 모습에서 누구를 위한 차례상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진정 후손을 사랑하는 조상님들이라면 피곤에 지쳐서 힘들어하는 후손의 모습은 바라지 않을 것 같은데, 대놓고 말하면, 엄마의 조상도 아니지 않은가? 죽어라 상 차려봤자, 그분들이 엄마한테 복을 주는 것도 아닐 테고. 그냥 며느리니까, 내 자식들 잘 되라고 하는 거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결론은 차례상 없는 명절은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한 날이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명절날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을 좀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명절은 모두가 즐겁게 쉬라고 있는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