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선택제 근무로 얻은 여유

시간선택제 채용 공무원 근무기

by 윤다서영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아마도 "나 저혈압이야."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자주 하는 말이었다. 진짜 저혈압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이른 기상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동생 모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어서, 아침마다 아직도 자냐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주말에도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9시만 되면 번갈아가며 분 단위로 깨워서 편하게 늦잠이란 걸 자본적이 없었다. 주말인데도 더 자기 위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놓을 정도로(컨디션이 안 좋다느니 등) 부모님은 일찍 일어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밤 10시만 지나면, 주무시다가 화장실을 가시거나 물을 마시러 나온 부모님이 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내 방 불빛을 보고 "아직도 안 자니. 어서 자."라는 잔소리를 잠에 취한 상태에서도 하실 정도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를 못마땅해하셨다. 나는 꽤 오랫동안 부모님이 잠자리에 들면 작은 스탠드만 켜놓고 지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노력도 해봤지만, 밤만 되면 정신이 또랑또랑 해지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저녁형 인간이란 말이 나왔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부모님한테 "나는 저녁형 인간이었어요!" 라며 열심히 목소리를 높였던 기억이 나는 거 보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부모님.)


그러니 당연히! 시간선택제 근무를 시작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후 근무를 선택했다.


현재 나의 취침 시간은 평균 새벽 2시 정도이고, 기상 시간은 9시 반에서 10시 사이다. 아침에 알람으로 잠에서 깬 적이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일어날 때도 가뿐하다.


출근까지 여유가 있어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멍 때리고 한참을 앉아있기도 하고, 15~30분 정도 가벼운 요가를 하며 몸을 풀어줄 때도 있다.


출근길도 편안하다. 버스는 언제나 여유가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바동거리며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에 쫓겨서 초조하게 시계만 바라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쫙쫙 빠져서 오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는데, 시간선택제 근무 8년, 나는 지금 그 시절의 출근길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어쩌다 한번 9시 출근을 할 때면, 버스에 꽉 차있는 사람들을 보고 화들짝 놀랄 정도이니, 나는 지금의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왜 오후에 출근하느냐고, 차라리 빨리 퇴근해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오전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묻는다.


어떻게 보면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것 맞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걸 수도 있다.


대신, 나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예민함과 초조함, 불안감 등 안 좋은 감정들을 많이 흘려보냈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면에서 확실하게 달라졌다. 솔직히 나에게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여러 상황들이 예전에 비해 편안해져서 그런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복합적이겠지만, 확실한 건, 7시 기상했을 때보다 똑같은 시간을 잤어도 수면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진짜 잤다는 느낌. 기상 시간에 대한 압박이 없어서 그런 건지 싶기도 하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시간선택제 근무로 얻은 선물(?)에 만족하고 있다.


시간선택제라고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듣기도 했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기도 했고, 상처도 많이 받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게는 내가 가장 힘든 시기 내가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선물이었는데, 너무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ㆆ_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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