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다서영 Dec 17. 2022

아버지의 빨래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옷장 깊숙이 넣어둔 내복을 꺼냈다. 그런데 옷을 펼치는 순간 향긋한 향이 코끝을 강하게 찔러왔다. 

"이게 무슨 향이지?"

기분 좋은 비누향이다. 

"아, 섬유유연제구나."

그런데, 거의 일 년을 옷장에서 꺼내지 않았는데, 아직도 향이 남아 있다고. 그러다 문득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빨래를 시작했다.


언제인지 아버지가 세탁기에 세제를 넣는 법을 물으셨다. 전원을 켜고 빨래를 돌리는 법은 알겠는데, 예전 통돌이 세탁기 때를 기억하신 건지 세제를 세탁기 안에 넣으시는 줄 아셨던 것 같다. 한동안은 그렇게 세탁을 하신 듯했다. 살림을 전혀 못하시는 분은 아니신데, 세탁기는 돌린 적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을 하고도 거의 10년 넘게 일을 하셨으니, 모르시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세제 넣으면 돼요."

"세제만?

"네. 넣고 전원 누르면..."

"그건 알아."


그 이후, 아버지는 빨랫감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시도 때도 없이 세탁기를 돌리셨다.


"와, 이번 섬유유연제 엄청 강한 건가 봐."

빨래를 개던 나는 코를 찌르는 비누향에 엄마에게 물었다.

"아닌데. 평상시 쓰던 건데."

"그래요? 근데 왜 이렇게 향이 강하지."


엄마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당신 섬유유연제를 얼마나 넣는 거야? 쏟아부은 거 아니야?" 하셨다. 아버지는 무슨 소리냐며, 적힌 대로 정량을 넣었다며 펄쩍 뛰셨다.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넘어가셨다.


당시에 나는 옷에서 솔솔 새어 나오는 비누향이 좋았다. 특히, 사무실에서 따듯한 기운과 함께 몽글하게 새어 나오는 비누향이 코끝에 닿을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당신 뭐 하는 거야?" 펄쩍 뛰는 엄마의 소리에 나는 후다닥 세탁실로 뛰어갔다.

"왜? 무슨 일인데?"

"아니, 네 아빠 좀 봐라. 섬유유연제를 저 안에다가 그냥 쏟아붓는다."

"응?"

아버지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엄마를 바라보며, "여기에 넣는 아니야?"라며 물으셨다.

"빨래할 때마다 세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세탁실로 달려가는 게 궁금해서 따라와 봤더니, 아이고."

엄마는 머리를 잡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가 탈수가 시작되기 전에 세탁기를 열고 그 안에 섬유유연제를 한 컵씩 쏟아붓고 계셨던 것이다.

"어쩐지 향이 오래가더라."

"아니,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었어? 세탁 다 끝나기 전에 섬유유연제 넣어야 하잖아."

"여기 있잖아. 넣는 통. 그나저나 당신도 참 대단하다. 탈수 시간을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거야? 아휴, 귀찮지도 않았어?"

"귀찮았지. 하지만, 안 넣으면 정전기 심해서 안 되잖아. 근데 여기는 세제만 넣는 곳이라며."

내 실수였다. "음. 아빠, 세제 넣는 거 옆에, 네네, 거기 작은 구멍, 그 안에 넣는 거예요."

"제대로 가르쳐줬어야지. 시간 놓칠까 봐 내가 얼마나 신경 썼는데. 당신도 진작 말해줬어야지. 내가 세탁실 뛰어가는 거 뻔히 보면서."

" 섬유유연제 넣으려고 가는 줄 내가 어찌 알고. 상상도 못 했네."


그 이후, 아버지는 제대로 섬유유연제를 넣기 시작했고, 코를 간질이던 비누향도 사라졌다. 일 년 만에 꺼내 든 내복에 배어있는 비누향을 맡고 있으려니, 당시의 몽글했던 감정이 스르르 새어 나온다.


정말 좋았었다. 따스한 비누향.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정말 술이 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