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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Dec 30. 2022

아버지는 엄마의 스토커(?)

엄마는 매일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파트 단지를 산책한다. 엄마 걸음으로 단지를 한 번 도는데 15분 정도 걸리는데, 4번(1시간)을 돌면, 들어오신다. 사실 나는 한 번 도는데 10분이 걸리는지 15분이 걸리는지 몰랐다.


아버지는 엄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는 산책을 가서 거의 집에 안 계셨다. 엄마가 안 계실 때마다 아버지는 내게 엄마가 들어오려면 몇 분 남았는지를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놀랍도록 정확했다. 30분 후에 들어온다고 하면 정말 정확히 30분 후에 들어오셨고, 20분 후에 들어온다고 하면 정확히 20분 후에 들어오셨다.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저기 봐봐."

아버지가 거실 창 밖을 가리킨다.

"엄마가 나가고, 한 15분 후에 여기 앞을 지나가. 그리고 30분 후에 또 지나가고. 한 4번 정도 엄마 얼굴이 보이면 그때 집에 들어와."

"... 15분마다 창 밖으로 엄마 지나가는 거 확인하는 거예요?"

"확인은 무슨. 그냥 지나가는 게 보이니까, 보는 거지."


우리 집은 6층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창 밖을 서성인다.

"지나간다. 오늘은 조금 늦게 지나가네. 아주머니들이 좀 늦게 나왔나 봐."

"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에이, 뭐 하시는 거예요? 엄마가 어디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그래요?" 그러면서 놀리곤 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대답을 하던 안 하던 "또 지나간다.", "이제 곧 들어올 거야."라며 15분마다 브리핑을 한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또다시 놀라운 모습을 보고 말았다.

"뭐 하세요?"

아버지가 월 패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누가 왔어요?"

하지만, 화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까 화면이 잠겼고, 아버지는 서둘러 "집 앞 보기" 버튼을 눌렀다.

"네 엄마가 곧 들어올 거야. 왜 안 오지."

"..."

진심 나는 '뮝미'라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곧 화면에 엄마가 나타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왔다, 왔네. 이제 도어록 누르겠어."라고 말하더니,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소파에 가서 앉으셨다. 그리고 들어오는 엄마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TV에 집중했다.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나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왜 그러냐는 엄마한테 "아니, 그냥." 그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한테 말하면, 징그럽게 무슨 짓이냐고 구박하실게 분명해서,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엄마가 어디를 나가기만 하면 조용히 일어나서 창 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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