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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Jan 27. 2023

아버지의 술잔 변천사

얼마 전에 커피 캡슐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컵 하나를 받았다. 엄마에게 튼튼해서 좋아 보인다고 보여드렸더니, 엄마는 잠시 컵 크기를 가늠해 보고는, 절대 아빠한테 보여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왜요?"라고 물으니,

"저 컵들 보여?" 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엄마가 가리킨 곳에는 컵 세 개의 컵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작은 사이즈의 하얀 컵, 중간 사이즈의 녹색 컵, 그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주황컵


"하도 대접으로 술을 마시길래, 내가 술잔으로 저 하얀 컵을 사 왔는데, 갑자기 녹색 컵으로 바뀌고,  어느 순간 주황 컵으로 마시고 있다, 네 아빠"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저 하얀 컵이 아빠 술잔 하라고 사 온 거였어요?"

"그래. 그리고 녹색하고 주황색은 물 으로 사 온 건데, 지금 술잔이 됐잖아."


마침 아버지가 내게 커피 한잔 타달라고 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사은품으로 받은 커피 잔에 커피를 타 드렸다. 커피를 가져가는 아버지를 보며, 엄마가 외쳤다.


"그 컵은 절대 안 돼. 커피잔이니까, 술 마시면 절대 안 돼. 술 냄새 밴다고."


엄마의 말에 아버지는 손에 든 커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주황색 컵보다 작은 거 같은데, 안 써."라고 하셨다.


그 모습에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안 그래도 술이라면 질색팔색인데, 점점 커져가는 아버지의 술잔에 엄마의 한숨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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