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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r 31. 2022

결혼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데, 바꾸자!

딸내미 시집보내기 대작전

거의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미뤄놨던 예능을 보던 중이었다. 갑자기 어색한 엄마의 웃음소리와 함께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큰 딸, 뭐해?"

"TV 보는데, 왜요?"

"아니. 그냥, 뭐 하나 궁금해서."


엄마는 내 방 침대에 걸터앉아서 잠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뭐야? 이게?"


받아 든 종이에는 한자와 한글로 2개의 이름의 적혀있었다.


윤서 그리고 다영

 

"이게 뭐예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마의 어색한 미소를 보는 순간! 번쩍 든 생각.


"설마, 아니지?"

"아주 유명한 곳에서 받아온 이름이야. 네 이름이 시집가기 어려운 이름이라잖아. 그래서 네 사주에 맞춰서 시집갈 수 있는 이름으로 받아왔어. 어떤 이름이 마음에 들어?"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던 언니가 개명을 하고 바로 시집갔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넌지시 너도 개명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결국! 이름을 받아온 것이다.


"나 안 바꾼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런 거 다 미신이야."

"희야(가명) 봐봐. 희는 이름 바꾸고 바로 시집갔잖아."

"무슨 이름을 바꿔서 시집을 가요. 그냥 간 거지."

"아니야.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희야 바꾼 이름 보고 이렇게 예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관심 가졌다잖아. 결국 그 직원하고 결혼했잖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야 언니가 실제로도 예뻤잖아'

하지만, 본인 딸이 희 언니에 비해서 빠질 거 하나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윤서가 더 어울릴 거 같은데. 어때?"

"마음대로 하세요. 나도 다영이보다는 윤서가 괜찮네. 근데 개명할 것도 아닌데, 이 이름 어떻게 하려고요."

"개명 안 해도 바꾼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고 했어. 앞으로 난 널 윤서라고 부를 거다."

"....."


그리고 정말 엄마는

"윤서야, 일어나.", "윤서야, 밥 먹자.", "윤서야, 윤서야."

나를 윤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스스 소름이 돋았지만, 계속 듣다보니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윤서라고 부르면, 장난삼아 나도 시원시원하게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윤서라는 이름은 내 기억으로 한 2주 정도 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2주 정도 지난 후에 자연스럽게 다시 원래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윤서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작가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엄마가 받아왔던 이름이 생각났다. 거금을 주고 받아온 이름이라고 했는데, 윤서와 다영, 둘 중 하나를 쓸까? 아니면, 그냥 둘 다 쓸까? 그래서 처음에는 윤서다영을 생각했다. 그런데 썩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한번 섞어봤는데, 윤.다.서.영. 오~ 마음에 드는데.


엄마가 시집가라고 지어온 이름, 윤서와 다영은 이제 내 작가명이 되어 다시 살아났다.


하아. 질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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