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사건이나 인과관계를 엮어 나열하는 서사(Narrative)가 중심인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미술 작품에서의 내러티브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상징, 비유 등 함축적 의미를 지닌 오브제들을 한 화면에 긴밀히 배치함으로써 그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메시지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숨겨놓기도 하는데, 이 그림들이 시간이 흐르고, 제작된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소개되면서, 시대적·장소적 맥락을 잃어 어려운 기호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글에서는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 중, 작품의 요소를 하나씩 읽어가며 그 의미를 추론하고, 이해하는 ‘이성으로 그림읽기’ 방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 까치의 의미 ◆
우선 ‘까치’라는 한 오브제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아보자.
“까치까치설날은...”과 같은 동요나 “까치의 보은(은혜 갚은 까치)”과 같은 설화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는 까치를 길조로 여겨왔다. 이에 반해 유럽에서는 까치는 불운을 가져오는 새로 여긴다. 까치의 이중적인 색 조합(머리부터 꼬리까지 전체를 이루는 흑색과 어깨, 배 부분을 이루는 백색)은 ‘위선’을 뜻하기도 하고, 시끄럽게 우는 소리 때문에 (나쁜 의미로) '수다쟁이’ 혹은 ‘밀고자’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속담 중에는 허풍이나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빗대어 “까치 뱃바닥 같다”라고도 하고, 네덜란드의 대표화가인 피테르 브뤼겔 (Pieter Bruegel)의 마지막 작품 <교수대 위의 까치(Die Elster auf dem Galgen)>는 제목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렇게도 다르게 인식되는 ‘까치’라는 하나의 대상이 서로 다른 문화권 안에서 제작된 미술작품 안에서 다른 역할과 의미로 작동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문화권 내에서 각 오브제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림 안에서 다른 오브제들과 관계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생성하는지 알아내 그 맥락을 읽어내는 작업이 오늘 말하는 이성으로 그림읽기를 하는 작업인 것이다.
*관아재 조영석 (1686-1761)은 조선 후기 영조 시대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이다.
◆ 파노프스키의 이코노그라피 ◆
이러한 개념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독일 태생의 미국 미술학자,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이다. 그는 이렇게 그림을 읽는 방식을 ‘그림 혹은 이미지’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eikón’과 ‘쓰다’라는 뜻의 ‘grápheïn’의 합성어 ‘이코노그라피 (Ikonographie)’라 하였다.
eikón + grápheïn = Ikonographie
그의 저서인 <Ikonographie und Ikonologie>에서 파노프스키는 ‘전도상학적 단계’, ‘도상학적 단계’ 그리고 ‘도상해석학적 단계’ 총 세 단계로 그림 해석 방법을 소개한다. 책에 소개된 쉬운 예시 하나와 함께 이 해석 방법을 따라보자.
한 남자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 그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오른손으로 자신의 중절모자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파노프스키가 전도상학적 단계에서는 특별한 지식이나 능력은 필요 없고, 그냥 작품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를 일차적, 근본적 의미(das primäre oder natürliche Sujet)라 한다.
tatsachenhaftes: 감상자는 아무런 판단 없이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냥 객관적으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ausdruckshaft: 여기에 아주 조금의 능력이 필요하다면 상황을 읽을 줄 아는 눈이 필요할 것이다.
한 남자가 저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밝은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자신의 중절모자를 (살포시)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저 남자는 왜 모자를 들었다 놓았지?’ 다음 단계인 도상학적 단계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이러한 의문점들을 제기해야 한다. 대부분 우리는 저 행위가 서양식 인사 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웬 남자가 지나가며 모자를 들었다 놓으면 갓을 쓰고 다니는 우리나라의 양반들은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을 보았나’ 하며 호통을 쳤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어떠한 사실에 대해 관습과 문화 등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 맥락을 읽는 것이 두 번째 단계에서 해야 할 일로, 이차적 관습적 의미(das sekundäre oder konventionale Sujet)를 파악하는 것이다.
⇒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쓰는 것은 서양식의 인사 법이다.
한 남자가 저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밝은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자신의 중절모자를 (살포시)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계속해서 나만 바라보며 미소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의미까지 파악하고 나면 해석 마지막 단계인 도상해석학적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적 의미(die eigentliche Bedeutung)를 찾아내는 것이 이번 단계의 목표인데, 여기에서는 작품이 속한 시간적, 공간적, 계층적, 문화적 등의 배경을 포함하여 이전 단계까지 읽어냈던 모든 내용들을 종합하고 유추해 최종적으로 그 본연의 의미를 해석하게 된다.
⇒.................. 저 남자는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구나. (아마 나에게 호감이 있는가 보다.)
위의 예시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버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영향권에 놓여 있는 경우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작품들에서 도상학적단계에 이르면 그 내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서양미술의 경우, 예전부터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기독교 도상학의 핵심 근거가 되는 성서 안에서 근거를 찾기도 하고, 외경이나 신화, 역사, 혹은 구전에 의해 전승되는 내용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에 소개한 파노프스키의 이코노그라피 해석법은 그림 읽기의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로 전공자들에게도 작품의 내용과 제작 의도를 밝히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복합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위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파노프스키 역시 그의 책에서 이에 따른 여러 교정 원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미술사적 흐름에서 이론이 정립된 1900년대와 지금의 미술은 개념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또한 파노프스키는 고전작품들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이후 많은 미술사가들이 작품 해석 방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방안들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고전 미술작품을 분석하는 데 있어) 파노프스키의 이코노그라피는 미술사 연구의 표준적 방법론으로 간주되어오고 있다.
셜록 홈즈가 사건을 추리하기 위해 현장의 증거물들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처럼, 그림 안에 함축된 것들을 하나하나 찾고, 그 근거를 찾고, 맥락을 읽어 내는 파노프스키의 이코노그라피 식으로 그림을 읽는 것은 미술품 감상에 있어서도 작품의 적극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한 이성으로 그림읽기의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