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게 무조건 좋을까?

싼 것을 찾는 사람들의 함정

by HR POST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한디? 가격~가격~가격이라는 광고가 있다. 가격이 정말 제일 중요한 것일까? 소비자의 입장이 아니라, 판매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싼 거에는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은 자본의 힘이다. 자본의 힘은 그동안 형성되었던 유통 구조를 다 무너뜨린다. 상품은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량으로 생산된 제품은 특정 공간으로만 모이게 된다. 일부 품목을 모아 놓는 작은 슈퍼들은 모퉁이만 지나면 우뚝 솟아 있는 에어컨 빵빵 터지는 00마트에 상대가 되지 못한다.


00마트, 대규모 포털 사이트, 모두 가격이 싸다. 그리고 싼 가격에 소비자는 만족한다. 좋은 상품을 싸게 파는 것이 시장 구조의 당연한 원리이기에 비판할 대상이 못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이 있다.



이상하다?


과거에는 공장이 물건을 생산하고 그 물건을 배포하는 도매상점이 있었다. 그리고 도매상점 밑으로 수많은 소매 업체가 있었다. 물론 그 유통구조에 중간 업자들이 이윤을 챙겨 제품 가격이 공장도 가격보다 많이 비쌌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공장에서는 이렇게 싼데, 왜 판매점에서는 이렇게 비싸냐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기업들이 소매업자들의 이윤을 줄이기 시작했다. 도매상이 점점 소매상까지 하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전은 그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사람들은 좋아했다. 물건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소비자를 위한 당연한 귀로였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점차 이상한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더 좋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왔는데, 내 생활은 나아지는 게 없었다. 이상했다. 분명 물건을 싸게 샀는데 왜 내 생활이 나아지지 않지? 아리송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 속에 소비자들은 갈 길을 잃었다.



중간이 없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샅샅이 연구해봐도 잘못된 것이 없어 보인다. 오늘도 언제든지 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를 과거와 비교해 봤을 때... 구매에 대한 만족도는 낮고 뭔가 매일 부족하다.


중간 유통업자의 생태계는 공급자와 소비자로 단순화되기 시작했다. 그 단순성 속에서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받는 것은 좋아 보였다. 하지만 중간을 형성하던 수많은 업체들이 부도가 나고 장사를 접게 되었다. 생태계의 중간 계층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장에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놀라운 복지 혜택을 받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싼 물건이 대량 생산되지만 내가 일할 자리는 없었다. 일자리가 없어졌다. 일자리들은 이상스럽게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싼 물건을 쉽게 구입해서 좋게 되었지만 점점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창업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지금의 생태계에 소상공인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가격 경쟁에서 상대가 안되기 때문이다. 거리의 동네 상가들은 '임대'딱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싼 제품이 넘쳐흐르지만, 사람들 수중에 돈은 없다. 열심을 내고 일을 하려고 해도 이미 형성된 구조에 파고들 방법을 찾기 힘들고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해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스펙이 있거나 엄청난 경험을 가진 슈퍼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그 자리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알바를 하며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상했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싼 물건을 구입하고 그 물건들을 영위하고 있는데 삶의 방향성은 모호해졌다.


창조의 재해석


모두들 창조를 이야기 하지만, 도대체 창조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저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창조는 모두에게 강요될 정신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조보다는 공무원을 선호한다. 그런데 정부 공무원들은 창조를 외친다.


TV광고는 말한다. "뭣이 중한디?" 가격, 가격, 가격... 그런데 그 가격의 마술 속에 사람들은 갈 길을 잃고 있다. 도매 공급자와 소비자로 이등분된 공급자 수요자 생태계에 과연 돌파구는 무엇일까?


현 정부는 그 돌파구를 창조라고 말하고 있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었다. 유수의 브레인들이 제안을 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갭 사이에 창조라는 구호는 매우 잔인한 구호로 다가온다. 그 창조는 단순히 아이디어로만 이룩할 수 없다. 창조는 현재 생태계의 갭을 힘차게 뚫고 나가야 할 수많은 능력을 요구한다. 생각보다 어렵다. 모두들 창조를 꿈꾸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창조를 말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엄청난 투자를 자랑하지만, 결국 한 마디로 정의하면 빚이다. 왜 투자를 빚이라고 생각하지 못할까? 투자자들이 공짜로 돈을 줄까? 절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전보다는 대기업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창조보다는 주어진 생태계에서 고임금을 받는 자리에 오르는 꿈을 꾼다. 당연하다.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노량진 학원의 공부가 더 어려워 보이겠지만, 현실은 창조를 통해 성공하는 게 더 어렵다. 모든 것은 그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봐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심각한 문제는 이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점이다. 어느 날 위기 상황이 닥쳐온다면 중간층을 잃은 생태계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창조만이 답일까? 가격이 싼 것이 답일까? 뭣이 중할까?


창조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Understaned different

H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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