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프레게스토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감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감성을 다스려야 한다.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응원이나 무 비판적인 위로가 삶의 현실적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
감성적인 구호들이 가져다주는 거짓된 결과는 역사를 통해서도, 다양한 삶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인간이 삶의 현실을 외면하고 감성에만 치우쳤을 때, 삶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 가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환경과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해지게 되는 것이다. 분노 사회의 이유가 사회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구조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간 내면의 변화 없는 사회 변화의 요구는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는 무절제의 행위가 동반될 가능성이 있다.
자연을 보자. 자연은 큰 웅장함을 자랑하고, 평온해 보인다. 자연은 수많은 상호작용과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에 급하지는 않다. 상황에 맞게, 환경에 맞게, 자신을 움직인다.
변화에도 순리가 있기 때문이다.
순리가 있는 변화는 여유가 있다. 왜냐하면 순리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꼼꼼히 상호작용해야 하기 때문에 급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분명하지만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여유가 있다고 해서 엉성하거나 디테일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상호작용을 맺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상호작용의 중요성보다는 분절을 주장한다. 분절이 빠른 발전을 이루는 효율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다. 그 결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여실히 사건 사고로 증명되고 있다. 해답을 찾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다. 문제의 원인이 점으로 이루어진 암세포가 아니라 혈액 안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자연 속에서 자연은 분명 조화가 있다. 순환이 있고 상호작용이 있다. 저 웅장하고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미동 속에서도 작지만 큰 변화가 있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자연은 그 다름을 말해주고 있다.
Understand different
H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