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목조 교회-
노르웨이의 목조 교회이다. 노르웨이에 목조 건물이 몇 개 있다고 한다. 원래는 많이 있었는데, 화재로 많이 불타고 없어졌다. 오른쪽에 있는 금연 표시가 임팩트 있고 나무의 오래된 '결'과, '색'이 멋스럽다.
약간의 돈을 지불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뭐 안에 볼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목조 교회를 보는 것이 흔하지 않은 기회이니 들어가 보았다. 목조건물이라 약간 삐거덕삐거덕거린다. 우연히 우리가 들어갈 때 영어 해설가가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두움은 빛을 강조한다.
천장은 대부분 어두 었는데 천장의 어두움은 '두려움', 즉 악마를 뜻한다고 한다. 교회에 악마를 표현하는 모습이 있어 의아했다. 당시에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빛을 향한 믿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어둠에 대한 공포에 사람들은 빛을 좇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천장은 어둡게 표현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빛이 더 강조된 것이다.
두려움은 종교의 본질이 아니다.
종교는 인간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신 아래 존재함이 억압과 두려움에 의한 강압이 아닌, 종교적 신성함에 의한 인간의 성숙함, 절제, 자유로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가끔은 종교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며 자유가 아닌 억압과 명령, 집단적인 이성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노르웨이 목조 교회에서 보는 악과 빛의 공존처럼 종교가 아닌 종교 지도자들은 악을 강조하면서 빛의 선함을 대비시키지만 그 대비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건들어 권위를 내세운다.
잠시 천년 전의 그들의 삶으로 돌아가 보았다. 겨우내 암흑 가운데 사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삶에 빛이란 무엇이었을까? 그 빛이 과연 어떤 의미로 그들 안에 존재했을까?
빛이 비치어 악마가 보인다. 두려움이 비추면 인간 내면에 있는 두려움이라는 악마를 깨우는 것이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가져다주는 인간 내면의 어두움이 비친다.
우리의 내면은 무엇을 두려워할까? 천 년 전의 노르웨이 목조 교회에서 느꼈던 그들의 두려움과 지금의 두려움은 다르겠지만, 무언가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라는 존재는 아직도 우리의 내면 안에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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