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by HR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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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

저자가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매우 추상적인 글이었다. 결국 글들이 처음과 끝으로 연결되고, 그 안에 "나"라는 존재와 연결된 "세계"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약하고 계속해서 글들을 쫓지 않는 한, 저자의 흩어진 의식의 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픈 것일까?"라는 질문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저자의 글을 따라갔다. 대부분 추상적인 관념에 대한 내용이라 '음...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런데 중간중간 곱씹어 생각할 만한 구절들은 있었다.

특히 독서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독서는 말 그대로 "그냥 읽는" 행위일 뿐인데, 독서가 매우 어렵고 힘든 "공부"라는 개념으로 탈바꿈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끝부분에 있다.

저자의 모든 생각과 메시지는 책의 말미에 있는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나, 세상 그리고 관계에 대한 내용이 말미에는 의식과 함께 정리되면서 내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저자가 하고픈 말은 '자신의 내면을 가꾸고 세상에 공감하며 옳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자"로 요약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내면 자아와 그리고 의식, 세상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내면 자아는 끊임없이 훈련된다. 아니, 가끔은 주변에 적응하기도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에서 생존과 이상을 추구하기도 하고, 가끔은 분노하기도 가끔은 슬퍼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로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가도 중요한 의식이다. 그 의식 위에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살거니?"

질문에 답을 하기가 피로하기도 하고, 매일매일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 스스로 단절을 요구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끔은 연결보다는 홀로 있는 시간이 좋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유니버설 한 연결 관계는 자연적으로 종교적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소 지구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그 관계에 대한 내 자아의 작은 반항이다. 마치 아이가 자신만의 옷장으로 들어가고픈 유아기적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쩌랴? 결국 저자의 말처럼 내가 있어야 세상이 있고, 세상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근거해서 시작되는 것을...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착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다른 말로 하면 "쫄아서" 살 필요가 있을까? 연결이라는 올무가 오히려 나의 자유함을 얽매고 있지는 않을까?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말에 설득이 되기보다는 저자의 생각에 반대되는 생각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 비판적 시각은 독서의 집중보다는 사고의 확장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만나다"라는 관념적 이야기보다는 "나는 홀로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자기반성의 독배가 더 어울리는 독서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운 책이다. 무언가 아는 것은 많은 것 같고, 읽은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커다란 핵심을 찾기가 솔직히 힘들었다. 그 모호성이 이 책의 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남는 메시지는 있다.

"괜찮다."이다. 아직 부족하더라도 괜찮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위로다.

"지금 이 순간 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무엇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난 충분히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선 아래에 충분히 존재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 나를 반기는 150일 된 딸아이의 눈빛과 반가운 미소를 보면, 그 연결의 존재가 나에게 있지 않고 내가 행한 결과물을 바라보는 관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의 존재감보다는 그 결과들이 나의 존재를 확인 시켜 주고 있음을 가슴으로 느낀다. 내가 만들어 놓은 존재들에 대한 나의 관조적인 시선. 그리고 바로 내 안에 밖으로 드러나지는 내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 그것이 존재감의 근원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지난 독서 모임에서 000님이 말하신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분신을 만든다는 말"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씨"를 뿌리고 그 뿌려진 씨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결국 그 분신이 존재의 이유이자 존재를 느끼게 하는 대상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 대상과의 연결고리가 바로 위 책 저자가 이야기하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의 메시지의 핵심이 아닐지...

난 자신의 주장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대중의 주장이 개인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특히 연결점들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개인의 자유분방한 사고까지 억누르려고 하는 공동체의 담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기가 만든 결과물들이 누군가와 소통되고 그 소통의 접점에서 연결점들을 찾는 것. 단지 그것만을 원할 뿐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언젠가 만나다."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지 생각한다.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된다. 행복한 영화의 끝은 만남으로 끝나야지. 생활로 들어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끝났어야 할 내용이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통해 현실을 극열하게 드러낸 것처럼, 추상적인 접점의 만남은 현실에서 꼭 이뤄줘야 할 강제성은 띠어서는 안된다. 가끔은 분절된 접점에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지금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은 무엇이며, 그리고 다시 연결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난 지금 어디에 서 있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현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 기준을 원칙으로 누군가를 다시 만날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 여지를 남겨 두는 것. 그것은 사실 타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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