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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Mar 31. 2016

뉴스의 시대

기자가 만족하는 저널리즘은 어디서 오는가?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


정보가 빠르게 지나간다. 너무 많은 양이다. 때론 그 양에 질식되기도 하고, 혹시 지금 정보가 선택되어진 의도성 있는 정보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실 한국만큼 언론 매체의 성향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곳은 없다고 본다. 서방 언론도 각자의 주장은 있지만, 한국처럼 특정 성향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언론은 헤드라인을 뽑는 것부터, 이미 짜인 프레임 속에서 의도된 정보의 양을 채우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파나 좌파나 각자의 프레임 속에 정보의 나열은 있지만, 독자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뉴스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뉴스를 보여주는 것인지 주장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언론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각자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질문과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대학시절의 꿈같은 저널리스트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직관의 중요성  


얼마 전 이세돌 9단의 알파고와의 대국은 한국 사회에 인공지능 열풍을 가져왔다. 인공지능의 열풍은 심지어 학구열 높은 학부모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미래를 대비해서 알고리즘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현상을 보면, 한국 사회의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얼만큼인지 예측할 수 있다.  


이번 대국에서 보듯이, 이제는 수의 싸움은 의미가 없어졌다. 수의 싸움에는 사람이 컴퓨터를 이기기 힘들다.  인공지능은 수의 계산에 있어 실수가 없고 정확한 알고리즘의 경우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계발된다. 기계와의  싸움을 인간이 더 이상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의 알고리즘은 경험과 기억에 의존한다. 이 경험과 기억은 정확성에서 연산 작용으로 수의 개념을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이 한계의 이면에 인간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우연의 수이다. 그 우연의 수에 대한 인간의 선택은 직관에 의존한다. 이 직관이 중요하다.


사실 바둑은 경우의 수에 의해 재미를 느끼는 게임은 아니다. 바둑의 재미는 인간이 가진 직관의 힘이 어떻게 대국자에게 서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예외성 느끼게 된다. 대국에서 상대방에게 느낄 수 있는 승리의 재미는 직관에 의해 선택한 수가 승리를 안겨 줄 때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수에 대한 게임은 더 이상 재미가 없을 것이다.



직관이 요구되는 뉴스


왜? 생뚱맞게 바둑을 통해 직관의 이야기를 하는가? 그것은 뉴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 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과거 신문방송학과에서 배운 취재보도론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항목이 사실(팩트) 이었다. 사실에 근거한 기사냐? 사실에 바탕을 둔 취재냐? 현장 취재냐? 등 사실 확인에 대한 진실성이 기사의 무게와 가치를 결정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기사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배웠다. 당시의 학문은 과거 군사정권이나 문민정부 시절에는 진실이 왜곡되거나 거짓된 정보가 대중을 왜곡했기에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만큼 기사 내용의 사실 확인이 중요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


지금은 사실 확인에 관해서는 정보의 가치가 작아졌다. 사실 자체에 대해서 의미가 줄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은 기본이 된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정보를 가지고 움켜쥘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미디어 기기의 발달이 정보의 분산과 생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고 정부와 관련된 내용도 보도자료나 공개 청구를 통해서 예전보다 많이 투명해졌다. 물론 아직도 문제가 있는 범주는 존재한다. 하지만 분명 과거와는 다른 세계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사실 확인에 있어서 그 접근 방법이 과거의 취재론과는 다르다.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대한 관점과 시각이 중요해졌다.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사실을 해석하는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같은 사건에 다른 성향의 헤드라인과 기사 내용이 올라오는 각 언론사의 내용만 확인해봐도 이 부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사실 확인은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확인 취재에 관하여는 여전히 기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기자들도 스스로 안타까워하는 점은 사실 확인에 한정된 기사 작성에 있다.


대부분 기자들은 자신의 사고와 가치가 녹아 있는 기사를 쓰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그래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꿈꿨던 저널리스트가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단순이 기사의 작성 글에 교묘한 프레이밍이 이미 존재하고, 의도된 의사전달이 집단의 정체성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상황이 멋진 기자를 꿈꾼 젊음이에게는 자괴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사의 단순한 사실 배열이 기자에게 주는 저널리즘의 재미를 주기에는 부족하다.


외국 언론을 잠깐 살펴보자. BBC의 경우 사실 배열을 함과 동시에 각 기자에게 자신만의 분석(Analasis)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준다. 그리고 기자 분석(Correspondent Analasis)이라고 박스를 만든다. 최소한 이런 공간 만이라도 개개인의 기자에게 주어진다면 기자로서의 직업은 매우 흥미로운 직업일 것이다.  


하지만 데스크 중심의 한국 언론 시장은 이런 기자 분석을 쓰면 아마도 데스크에서 잘릴 것이다. 소설 쓰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편집국장이라는 게이트 키핑은 뉴스룸에 들어오는 많은 뉴스들을 가공하여 집단의 정체성을 만드는 요리사이다. 그리고 많은 기자들은 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선후배 관계가 이상스럽게 존재하는 이 언론계의 현실은 매우 딱딱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선배의 경험을 존중할 수 있지만 과연 그 경험의 존중과 위계질서의 관계는 어떠한 상호적인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하우스 오브 카드


미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서에  SLUGLINE이라는 한 언론사가 나온다. 정론지를 박차고 나와 갈 곳을 찾던 드라마 속 여기자가 선택한 온라인 신문사이다. 그녀는 편집국장과의 마찰로 퇴사를 하고 자유분방한 온라인 신문인 SLUGLINE에 입사하게 된다. 정론지에서 오랫동안 일한 여기자가 그곳의 분위기에 익숙해 지기는 낯설다. 기사를 쓰는 것도 자유로운 편집국에 있는 것도 모두 어색하다. 자유로움에 익숙지 않은 그녀는 자신의 기사를 회사 시니어에 메일을 보내 체크를 받는다.


하우스 오브 카드서 나온 SLUGLINE 온라인 신문사

"You don't have to send me things before you post.


"Oh. I thought you might want to have taken a look, " Zoe replies. "The goal here, " says Carly, "is to post things faster than I can read them... If you're satisfied with the article, just put it up. It's OK to be opinionated, Zoe


위 내용은 드라마에 나온 대사의 일부를 발취한 내용이다.


"네가 기사를 포스팅하기 전에 나에게 보낼 필요 없다."

" 오 난 그냥 당신이 내 기사를 먼저 보길 원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의 목적은 내가 그것들을 읽는 것보다 더 빨리 기사가 포스팅되는 것이다. 만약 네가 내가 쓴 기사에 만족한다면 그냥 올려라 네 의견을 고집해도 된다. "


그리고 뒤에 하는 말이 있다. SULGLINE 편집장이 그 전에 있던 직장에 근무할 때 상관에 의해 많은 제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그 상관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힘겹게 모아 이 온라인 저널리즘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티클에 만족하는가 그럼 올려라!"



기자가 만족하는 기사


사실을 말하지만, 사실의 배열이 전부가 사실은 아니다. 어떤 사실을 어떻게 진열하느냐에 따라 사실을 왜곡될 수도 있다. 모든 기사가 중립적일 수는 없다. 단지 이제는 기사가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직관의 형태로 변해가야 하는 점이다.


기자가 만족하면 된다. 기자가 어떤 생각을 하던지 만족한다면 올리면 된다. 특정 법률에 갇힌 언론의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내용으로 고소가 되거나 언론중재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언론이 아닌 개인적인 글로 글을 올리면 된다. 기사가 곧 기사가 될 필요는 없다. 아티클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직관을 던진다는 것은 기자의 분석을 기반으로 기자의 시선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 그림 속에서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이야기할 것인가는 그 기자의 몫이다. 읽고 안 읽고는 독자의 자유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기사가 될 수 있고, 더 의미 있는 기사가 될 수도 있다.  



독자의 시간이 바뀌다.


전문화되는 사회에서 독자는 시간이 없다. 모든 뉴스를 섭렵할 이유도 없고, 모든 뉴스를 소화할 수도 없다. 자신과 관련된 뉴스만을 찾아보면 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뉴스만 골라 보면 된다. 모든 기사를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어떤 기자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 사실 중요하다. 독자가 가진 생각과 기자가 서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을 만큼 현대인들은 바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바쁜 세상 속에서 더 많은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자신들의 뉴스에 더 많은 사람들이 트래픽 하는 것이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양의 숫자와 클릭수가 재정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 가치에 대한 깊은 기사는 점점 사라지고, 데스크의 입장으로 편향된 기사의 내용들이 쏟아 지거나 베끼기 기사들이 난무한다. 아니면 언론사의 특정 성향에 기반한 뉴스 사실들이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점점 독자의 사고를 좁게 만든다.



세상은 변한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온라인 뉴스, 개인 블로그들, 전문가 집단의 매거진, 일반인들이 글을 쓰고 일반인들의 글을 읽고 있다. 일반인들의 글이 뉴스가 되고 있다. 언론사의 뉴스가 사실 관계를 취재하는 영역으로만 흘러갈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현재도 뉴스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하는 역할을 해당 분야 일반인들이 더 명확히 하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뉴스를 편집하고 뉴스의 가치를 재가공하며, 배열된 사실을 분석하여 자신만의 시선을 말해 독자층을 형성한다.  


특정 블로그에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그 정보를 수시로 교류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 뉴스의 중심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정론지들의 어떤 방향으로 과거 언론의 기능을 유지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지금처럼 특정 성향의 계층에 편향된 기사들을 배열하는 것은 분명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자라는 직업의 미래도 점점 궁금해진다.




Understand different

H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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