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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Oct 29. 2018

경기 문제를 소비 격차로 보는 시선에 대한 비판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61590&fbclid=IwAR2009kbMIwEij4L4K7h1zzRwcrkbSAawvewSfOw8yr3-dARBIS8a6jLhJs



소비 문제를 격차 문제로 정의 한다. 


지금 문제는 상위계층의 소비가 문제가 아니라 하위 계층 분포의 확산과 그들의 소득 감소에 있는 것이다.

그럼 소비를 보자. 


예식 비용 소비, 부유층(?)의 지나친 과소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일부 한정적으로 사용하던 호텔은 지금 호텔앱에만 들어가도 수 많은 호텔이 10만 원 안밖으로 구매 하여 사용할 수 있다. 이미 대중화 되었다. 그럼 이게 비싼가?


아니다.


호텔 유지비 + 인건비 + 여러 소비재 상품 교환을 하면 사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격을 정하고 있다. (더 싼 호텔도 많다.그리고 과거에 잘 나가던 호텔들이 싸졌다. 이태원 더 킅XX 콜록 콜록)


소비 비용 가격 상승은 경제가 발전하고 통화량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중요한 점은 이 가격을 시장에서 소비자가 구매하는 척도다.


경제 발전은 호텔 사용을 평준화 시켰지만, 새로운 시장 가격을 위해 프리미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 명품은 왜 생기나? 소가죽이 비싸서 생기나?


그럼 자영업자를 위하는 시선을 보자. 
가격 천 원 올리기 어렵다고 한다. 
맞다.


그런데 그건 가격과 상품을 동일선 위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디아 커피점 있어도 사람들 스타벅스 간다. 천원 짜리 GS 커피 있어도 맥도날드 1200원 짜리 원두커피 있어도 4000원 5000원 넘는 커피 마시러 간다.


왜?


그럼 그 커피 사는 사람들이 부유한 계층인가? 아니다. 아마 이 글 보는 모든 사람들이 속한 계층이다.


사실 진짜 어려운 사람은 이것도 못 마신다. 그런데 진짜 어려운 사람은 하위 소득 1분위 사람들은 일 자리가 사라지고, 소득도 줄고 있다. 왜?


소득 분배 정책을 펴는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 때문은 아닐까? 이건 언론에서 여러 방면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이를 소비문제로 이분화 시켜 무마시키려는 아래 기사에 고개가 까닥...


그럼 다시 가격의 비율을 보자. 
경제가 발전하고 통화량이 많아지면 제품은 다양해진다. 그리고 과거에 비싸던 제품들이 가격이 떨어진다. 그리고 대중화가 된다.


호캉스 말? 과거에 있었나? 
그럼 이 호캉스는 현재 부유한 계층만 누리고 있나?


제품과 가격, 그리고 통화량과 물가. 
이 기본적인 원리를 소득 불평등이라는 프레임으로 나눈다.


그럼 하위 계층에 대한 시선은 무엇인가?


기자가 잘 말하고 있다. 
밀턴 프리디먼의 말처럼


소득세에 대한 가난한자에 대한 지원이다.


그런데 기자가 말하듯. 어느 정도 소득을 내는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즉 모두가 소득만큼 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부의 입맛대로 소득세율(요율)을 정해서 산업을 재단하고 이에 맞추어 정부의 힘을 과시한다.


밀턴 프리더먼은 이를 지적하며 
자유 경제를 제시한다.


그럼 소득격차가 없냐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면 소득격차는 생긴다.


부자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도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끝까지 가난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일부 부자만 존재하던 사회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제품과 상품을 누리는 사회가 되고 소득의 격차는 생기지만 제품과 상품을 누리는 격차가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프리미엄 상품은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는 누리는 영역이 넓어 진다.


그리고 최하위 계층은 부자들의 공통된 소득세로 정부의 역할을 통해 지원 하는 것이다. 이게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말이다. 그게 정부의 소극적 역할이다.


그런데 부의 계층을 나누고 소득을 말하면 정부의 역할만 커진다.


그리고 전체적인 시장과 부를 축소 시키며 일부의 부로 편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것이 밀턴 프리디먼이 소득세에 지적한 영역이고, 여기에 관세 이야기는 별도로 진행된다.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가 왜 가능하고 복지국가가 가능할까?


그건 바로 인식의 차이다. 덴마크에서는 소비 패턴, 즉 프리미엄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개인의 주체성이 개인에게 중심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내놓는 비싼 차, 비싼 예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어느 정도 소득을 받는 사람도 그닥 그 소비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이런 문화를 까면서 이런 문화의 차별성을 극대화 시켜 준다. 즉 부러움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오히려 시장의 역할을 도와준다.


뭘까?


소비와 가격 그리고 상품과 제품의 문제를 소득격차로 이야기 하는 기사에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 소득격차의 무서움은 완만하게 있어야 피라미드가 항아리가 되고 있는 점이다. 가처분 소득이 줄고 있고, 시장의 돈은 부동산이나 예금으로만 몰리고 있는 점이다.


부자들을 옹호하는게 아니다. 
경제 시각을 비판 할 뿐이다.


기자들의 다양한 경제 시각에 
시민들은 충분히 논의 할 필요가 있다.



HR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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