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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Nov 01. 2018

난민 문제 대립의 새로운 시각

https://youtu.be/e98TxS0imOI



난민...



소수의 난민 유입은 국내 분열 보다는 환대를 가져 왔지만 
다수의 난민 유입은 국내에 분열을 가져 온다.




왜 일까??



타인에 대한 선(착할선)의 시각이 소수자일 때는 톨레랑스를 보이다가 점점 그 숫자가 많아지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두려움이란 결국 다른 측면에서 또 하나의 집단과 집단의 갈등이 된다. 그 집단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나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집단과 집단의 갈등을 더욱 심화 시키는 대립이 아니다. 대립은 ‘사람들은 왜 극단으로 흐르는가’라는 책에서 말하듯이 서로가 집단 안에서 위로를 받고 인정을 받으며 그 집단의 주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한 사회에서의 공존보다는 분열로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난민 문제는 어떤가...

개인적으로 난민 문제는 최대한 난민 반대자의 의견을 끌어 안으며 점진적으로 난민 문제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난민 수용의 당위성만을 강요하기에는 반대자의 주장을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의견은 매우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국가의 혜택은 받는데 국가의 의무를 하지 않는 난민(군대)에게 징병의 의무를 지우게 하는 문제? 이 물음에 답할게 없다...

하지만 난민 문제를 집단과 집단의 문제로 끌고가면 결국 그 끝에서 분열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폭력을 억압하는 정부의 개입이 시작된다. 결국 시민은 정부에 공권력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해결책일까??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개인에 대한 시선이다. 즉 난민 개인의 인생에 포커스를 비추는 거다. 집단과 집단의 싸움에 “개인”을 집어 넣는다.
개인 스토리를 듣는다. 그리고 한 명의 인생을 듣는다. 이건 난민 이라는 집단의 옹호가 아니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3년 전부터 공익법 센터 어필과 “더 나은 이야기”라는 영상을 만들고 있다. 육아로 인해 최근 들어 활발히 작업을 못하지만 현재까지 만들고 있는 난민 개인의 이야기는 총 4명 이었다.

한 분은 중간에 개인적 사정으로 멈추게 되었고, 2분은 짧은 영상을 통해 사람들과 토크 콘서트를 했다. (수단, 파키스탄)

이제 곧 미얀마 난민 “쁘이(가명)”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 난민 분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중동에서 온 난민이 아니라, 미얀마 난민 분이다. 이전에 작업한 난민도 수단과 이란, 그리고 파키스탄 이었다. 난민하면 중동이라는 이미지가 있는지 않는지...

거리와 시간의 제약으로 많은 작업을 못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개인의 스토리를 담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집단과 집단 사이에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한다.

서로 메가폰을 잡고 집단의 주장을 할 때 어디선가 중간에서 “혹여나 내가 될 수 있는 개인의 이야기가” 나지막히 들릴 때, 사람들은 무언가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게 되지 않을까?

난민 수용이냐 반대냐 라는 담론적인 논쟁 보다는, 한 사람을 향한 시선,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그 정접이 삶에서 더 중요하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다.



HR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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