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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Dec 20. 2018

어디로 갈까, 마음콩 쑥쑥 - 봉사 -

일의 의미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손.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그의 저서에 보면, 모든 영역의 일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고, 이 이익이 서로의 필요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채워 준다고 말한다.


이 이론을 설명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비난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어보면, 이 이기심 자체를 '넌 이기적인 인간이야.'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속에서 각자의 이윤을 얻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요즘은 단순히 이기심 만으로

작은 가게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않는다.


더 좋은 상품, 더 좋은 가격을 제공할 때만

다른 사람의 지갑을 열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단순히 '돈을 벌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모든 일의 의미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단지 그 일의 가격이 다를 뿐, 

가치 평가의 절대 기준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격이 가치 척도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치를 측정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치품이 모든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갑질의 문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에 


내가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만약 홀로 외딴섬에 떨어진다면, 

모든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종이컵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하루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좋은 서비스를 받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일에는 각자의 의미가 있다. 


물론 가격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격일 뿐, 

의미라고 할 수는 없다. 



상상력


자본주의 사회에서 숫자와 싸움을 하고 나면,

점점 상상력을 잃어 간다.


모든 것을 몰랐던 시절, 모든 사물은 상상력을 만드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사회에 익숙해질 때, 상상력보다는 무언가 딱 떨어지는 숫자를 원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결국 '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세상은 상상력을 꿈꾸는 사람에게 '부'의 명예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들여져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상상력을 잃고

나와 타인의 관계마저

점점 잃어 간다.



봉사라는 무거운 단어 


그렇다면 봉사는 '손해'를 보는 것일까? 

즉 숫자로 - 를 기록하는 것일까? 

나의 이기심을 채워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시간일까? 

 

나와 타인과의 상상력을 잃어가는 어른들은 

봉사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서비스의 존엄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 고객이라고 하면서 

갑질을 할 때, 


우리는 스스로 고개를 숙인다. 

 

그건 고객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자존감의 하락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관계 속에서 

타인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윤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서비스를 거절할 수 있어도 

나의 일까지 욕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도 없다. 

 

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지 

당신에게 욕을 먹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면 다른 서비스를 찾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봉사는 희생이 아니다.

봉사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자신의 일이다.

나의 서비스는 누군가에 제공하는 자부심 있는 나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 나은 노력을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밑에는 나의 상상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해 보면 어떨까?' ,'저런 것을 해 보면 어떨까?'


이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각자의 이기심'의 근본 원리다.

 

내가 누군가에 하는 봉사는

철저히 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강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과 상상력 


우리는 동물을 보고 상상을 했다. 

무거운 짐을 사람들 대신 나를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바다를 가르는 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인간의 상상력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현실이 된다. 

 

그래서 아이의 상상력은 인간의 잠재성이며 

인류의 미래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미래의 현실이 된다. 



아이들은 상상력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미쳐 어른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아이들은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풍선처럼 둥둥 


'미래의 어떤 인재상이 중요한가?'라는 말을 많이 하고 

'그냥 아무나 돼.'라는 말도 많이 한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봉사를 하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현실화 시키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우리는 희생이 아닌, 봉사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고, 


나의 일을 날마다 새롭게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상상력을 잃지 않은 사람임을 

딸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하는 딸 하은이에게... 


 

동문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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