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
무엇이 양성평등일까? 또 이것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쉽지 않다.
남자와 여자는 같다고 말한다? 아니면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굳이 남자와 여자로 인간을 나눠야 할까?
다양한 의문 속에서 그림책을 읽는다.
다람쥐 람다는 파란색을 좋아한다.
어느 날, 숲속에서 풍선 놀이를 한다.
람다는 파란 풍선을 갖고 싶다.
하지만 파란 풍선은 사슴이 갖는다.
파란색을 가지지 못한 람다는 실망하고, 슬퍼한다.
람다는 분홍 풍선을 싫어한다.
분홍 색은 여자 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 색?
'색에는 성별이 없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걸까?
만약 거기서 끝나는 내용이라면 이 그림책의 매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재미있는 부분은 뒷부분에서 전개된다.
색깔 동그라미를 만난 람다는
풍선과는 다르게 분홍색 동그라미를 좋아한다.
왜일까?
여기에 그림책의 재미난 포인트가 있다.
바로 대상이 바뀌었을 때, 대상 속에 갇힌 색의 편견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람다는 풍선의 분홍색은 싫어했다. 하지만 요정이 만들어준 동그라미의 분홍색은 좋아한다.
같은 색이지만 대상이 바뀔 때, 람다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람다가 분홍색을 싫어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편견과 차이
편견은 약간의 차이다.
어떤 대상을 어떤 각도로 바라보냐에 따라 편견이 될 수 있다.
각도의 차이가 고정될 때, 편견이 된다.
그래서 차이에 대한 고립이 편견이 되고,
결국 편견은 나의 두 시선을 가리게 되는 고정관념이 된다.
양성평등을 이야기할 때,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평등은 차이를 인정할 때
또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차이'란
높고 낮음의 차이가 아닌
좌우의 각도의 차이다.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보편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그 차이를 편견으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차이의 인정은 오히려 서로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제대로 알면
오히려 차이를 극복하고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서로가 차이만을 내세울 때는
하지만 차이를 다르게 해석할 때, 서로를 공격하는 편견이 된다.
왜 동그라미는 좋아하는데
풍선은 싫어할까?
풍선이라는 대상에 색을 입혀
그 색을 자신의 편견으로 정의 내리는 것
일상 속에서 너무나 많은 대상을 우리는 이렇게 정의 내린다.
결국 이 편견 속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는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고 서로가 싸우며
남편과 부인을 나누고 서로가 싸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고 서로를 쳐다보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고 서로를 증오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인지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씌운 색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바라보는 정의.
어쩌면 그것이 인생을 재미나게 사는 성공 요인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아이에게 마음콩 쑥쑥을 읽어 주며
아이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아이가 그냥 느끼는 대로 놔두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어쩌면 아이의 편견은 나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입한 시각의 차이가 아이에게 편견으로 자리 잡힐지 모른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색을 입히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에 대한 방향성 보다 나의 힘을 빼고
아이가 그저 느낄 수 있도록
풍선이나 불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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