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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Jun 08. 2016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시장의 함정 

https://youtu.be/cC6mv0KhOBY


편견과 차별 


깡마른 외모, 어딘지 모르게 술에 찌든 표정의 얼굴... 주인공의 모습에 무슨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내 안에 작용하는 편견이 그의 이미지를 해석한 걸까? 


어느 날 그의 깡마른 외모처럼 그는 힘 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병원. 그는 그곳에서 인생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에이즈다. 


카우보이의 남성적 이미지, 석유 정제 회사에서 전기공을 하는 노동자의 이미지, 마약과 술에 취해 섹스를 즐기는 폐인모드 이미지, 그의 이미지는 세상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그는 심지어 세상이 반기지 않는 질병에도 걸린다. 그는 세상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하다. 



규제의 뒷면 

세상의 법과 제도는 원래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법과 제도가 사람이 아닌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갇히는 경우가 있다. 아직 소수의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과 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주인공 "론"은 자신의 병을 받아 들일 수 없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통보는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잔혹한 편지다. 죽을 마음이 있거나 모든 것을 이룬 사람에게는 세상이 미련이 없겠지만, 아직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한 주인공에게 죽음의 통보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다. 


병을 낫기 위해 병원 약을 투여하지만, 그것이 제약회사의 임상 실험을 위한 약일뿐, 실질적인 치료를 하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그에게 남은 30일. 하지만 그에게는 방도가 없다. 살아야 한다. 몰래 구입하는 약일지라도 상관없다. 세상의 법과 제도도 그를 돕지 않기 때문에 그도 세상의 법과 제도를 지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몰래 구입한 약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다. 또다시 세상에 쓰러진다. 



이익을 위한 규제? 


세상의 규제는 사람을 위해 국가가 만든 최소한의 틀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틀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틀로 작용한다. 


주인공 론은 새로운 약을 구하러 멕시코로 건너간다. 멕시코에선 미국에서 불법으로 판명된 약이 환자들을 위해 투여되고 있다. 론은 그 약을 먹고 또 다른 삶을 추구한다. 결과는 삶이었다. 그는 살았다. 


결국 그는 그 약들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약을 판매(?)한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약을 파는 론이 만든 클럽이다. 그는 회원제 클럽을 만들어 약을 판다. 정확히 말하면 영양제다. 하지만 이 영양제가 모이면 약이 된다. 영양제이기에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도 없다. 


론의 클럽은 병원에서 만났던 게이 "레이언"과 동업을 하게 되면서, 에이즈 환자 판매망을 뚫게 된다. 판매망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클럽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에이즈 걸린 전국의 환자들은 론과 같은 삶을 찾고 싶어 한다. 



시장의 함정 


시장은 보호되어야 한다. 사람들도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주의는 온전한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시장의 자유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론은 명성은 결국 FDA 보건당국의 제재로 인해 망가진다. 그는 레이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클럽의 어려움을 막을 수 없다. 세상은 그를 다시금 쓰러지게 한다.  


영화에서 에이즈는 세상의 편견을 말한다. 아직도 에이즈는 편견을 가진 질병 중 하나다. 그래서 그들은 소외되었다. 그들의 소외에 시장은 관심이 없다. 시장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다수를 위해 형성된다.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은 마련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장의 원리다. 그래서 시장은 론의 직장처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석유를 파는 사업에는 매진하지만 론같은 노동자가 에이즈에 걸리면 도통 관심이 없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론은 결국 죽는다. 그는 에이즈로 소외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부를 위해 만든 클럽은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과 같은 소외된 사람을 위한 클럽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클럽에서 그들을 위한 대변인이 되어 버린다. 결국 그는 소수의 클럽을 위해 다수의 시장에 맞서게 된다. 



슬픈 카우보이 


다수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모여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날뛰는 아픈 소 등에 한 손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는 한 사람을 지켜본다. 모두들 그가 언제 떨어질지를 기대하며 내기를 한다. 그 외로운 카우보이는 최대한 그들의 기대의 시선에 자신의 모든 힘을 다쳐 슬픈 소 등에서 버틴다... 마치 론처럼... 



Understand different 

H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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