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영국
영화 원스 Falling slowly
2007년 짧게나마 영국에서 살던 시절이다. 평소 좋아하던 시네마 아트에 갔다. "Once"라는 영화가 걸려 있다.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 그냥 잔잔한 영화처럼 보인다. 재미있을 것 같아 표를 끊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귓가에 음악이 맴돈다. 하지만 단순히 음악만을 들려주는 영화가 아님을 느꼈다. 영화는 영국 사회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만의 시선일까? 난 영화 속에서 영국의 문제를 읽었고 그 문제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도 느꼈다. 카메라는 영국의 아픔을 담담히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낭만이 있는 영국 청년, 힘든 삶을 영국에서 보내고 있지만 음악으로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는 체코 소녀다. 이 둘은 음악을 하고 거리를 배회한다. 영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는 그들은 적응하지 못한다. 그저 그들은 오늘을 산다. 그리고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그들은 영국이라는 땅에서 서로에게 끌린다. 음악은 그 끌림의 매개체다. 그들은 노래한다. 그들은 노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국적을 가진 서로 다른 사람이다.
2008년 한국에서 "원스"가 개봉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했다. 아름다운 노래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에 뭔가 다른 예술적 향기를 느꼈다. 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에 집중한 감상평은 많은데 영화 속에 보이는 영국 사회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영화는 노래로 승화된 영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한다. 더 이상 원스의 체코 소녀는 쉽게 영국 땅에 가지 못한다. 그들의 만남은 이제 자유롭지 않다. 결국 그들은 공존은 끝이 났다.
"브렉시트" 박빙의 승부였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그들은 브렉시트를 받아들여야 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새로움만 있을 뿐이다.
브렉시트의 가장 큰 원인을 꼽는다면 결국 경제다. 이주민의 유입과, 최근 불거진 난민의 유입까지 영국에 몰려드는 이주자들은 가히 놀라울 정도로 많다. 영어권이기 때문일까? 유럽의 타 국가들보다 영국을 더 선호한다. 영어는 영국의 힘을 상징했지만, 현재는 그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이주자들은 영국으로 모였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게토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끔찍했다. 그리고 모든 일자리에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며 하나둘씩 영국의 경제를 잠식하고 있었다.
영국의 서민층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동유럽 국가에서 몰려온 이주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했고, 그들은 영국의 선조들이 쌓아 올린 사회 복지제도를 당연스레 이용했다. 영국인들의 관대함은 오히려 그들을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그들의 마음이 폭발하였다. 이제 그들은 이주자들을 내보내려 한다. 영국인들은 "This is England"를 외치기 시작했다.
유럽 연합은 영국에 참으라고 말한다. "좀 더 포용적인 정책을 펴라.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적인 말로 영국을 옭아맸다. 영국은 독립하기 원했고 결국 유럽 연합을 등졌다.
영화 원스의 남자는 영국을 상징한다. 영국의 서민층이다. 수입원이 확실치 않고 전형적인 영국 악센트의 낭만만을 찾는 사람이다. 체코의 소녀는 영국으로 온 이주자를 상징한다. 소녀는 허름한 옷에 떠돌아다닌다. 별다른 직업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다. 영국은 그녀에게 그런 존재다.
그들은 영국에서 살지만 둘 다 어렵게 산다. 하지만 체코의 소녀가 더 어려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영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내면에 어느새 이런 속삭임이 싹트기 시작한다.
소녀는 영국의 재산을 뺏기 위해 오지 않았다. 소녀는 욕심이 없다. 그저 영국에 일을 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그녀는 노래를 할 뿐이다.
둘의 어색한 만남은 노래를 통해 가까워진다.
브렉시트의 결정의 가장 큰 원인을 대중의 심리로 꼽힌다. 경제 현상이 원인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사실 브렉시트 전후의 경제 지표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세밀한 경제 분석도 영국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미 그들은 이주자들에게 화가 나 있었고 그들의 게토에 분개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영국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세우며 게토를 형성하고 영국 사회와 어울려 살지 않는 성향을 보여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영국인들에게 차별을 주장하지만, 그들 또한 영국에 대한 자신들의 차별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브렉시트 선택은 감정의 문제로 치닫아서는 안 됐다. 이는 영국의 미래가 달린 문제기 때문이다. 영국은 위기였고 그 위기는 이주자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국은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고 그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은 원스의 주인공처럼 노래하지 못했다. 그들은 천천히 사랑에 빠지지 못했다. (Falling slowly)
원스의 두 주인공이 화음을 맞추며 사랑을 노래하듯이 그들은 더 나은 영국을 위해서 노래해야 했었다. 그들은 가슴 깊이 나오는 영국의 힘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감정에 휩쓸린 그들의 선택이 걱정스럽다. 화나는 감정을 조금만 더 노래로 승화할 수 없었을까?
누구도 미래를 섣불리 예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스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영국은... 사실 걱정스럽고...
슬프다.
Why didn't sing a song for harmony.
I understand your angry but the decision is worried for you.
Once, I hope sing a song for love. You are great sun in the world.
-Brexit-
Understand different
H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