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타령'은 준비 부족의 증거
"오직 국민만 바라보겠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들이 자주 내뱉는 구호 중 하나입니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일견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말을 반복하는 정치인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아젠더가 없다"는 준비 부족을 인정한 것이거나 "인기 없는 개혁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거죠.
모두에게 환영받는 '개혁은 없다'
대통령이 국가적 개혁을 시도할 경우 법과 제도의 변화에 따라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깁니다. 가령 '노동시장 개혁'의 예를 봅시다. 기업의 노동자 해고의 자유도를 높인다고 하면 기업가들 입장에서는 효율적 인력 운용이 가능해질 겁니다. 반면 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해고 불안을 느껴야겠죠.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기술적 숙련도를 높여서 임금을 높이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신규 채용이 늘어나면서 기회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정성에 시달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노동시장을 현재 상태로 둔다면 가뜩이나 저성장 구조에서 취업 기회조차 잡기 힘든 청년층은 더욱 갈 곳이 없어질 겁니다. 기업이 고용의 경직성으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사례도 많아질 겁니다. 진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통령이라면 취업 기회 창출을 위한 개혁에 나서되,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망 마련을 고민해야 할 겁니다. 이 과정은 매우 지난할 것이고, 어떤 국민은 이익을 보고 어떤 국민을 손해를 볼 겁니다. 이때 외치는 '국민'은 누구일까요.
부동산 규제 완화, 반값 아파트 공급, 국민연금 개혁, 모병제 전환, 여성할당제 폐지, 사형 집행 재개, 차별금지법 제정, 세종시 수도 이전 등 언뜻 생각나는 대선 이슈만 해도 모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것들입니다. 대통령이 결정해야 일들은 대부분 너무나 뜨거운 논쟁 속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큰 잘못 중 하나가 인기는 없지만 꼭 해결해야 할 개혁 과제를 방치했다는 겁니다. 지금 시기에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그 부담은 후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정치는 결국 한정된 재화를 배분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결국 대선후보라면 막연히 국민을 외칠 게 아니라 각종 개혁과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떤 철학을 가지고 누구를 어떻게 대변할지 설명하고, 유권자를 설득해야 하죠.
이번 대선이 단순한 이미지 대결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공약 논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국가를 이끌 비전, 개혁과제에 대한 입장 등이 꼼꼼히 비교됐을 때 우리는 다음 정권에서 발생할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언론인인 저부터 노력해야 할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