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취재 후기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실제로 보니 잘생겼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대중 행사를 할 때마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이어집니다. 그가 출연하는 방송과 유튜브에는 댓글이 넘쳐 나고, 에펨코리아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돌을 뛰어넘는 인기를 자랑합니다. 필자는 30대 정치인이 이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은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정치부 기자 입장에서도 이준석 대표는 반가운 취재원입니다. '언론 프렌들리'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기자들과 일상 소통을 즐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발언을 공적, 사적 자리에서 거침없이 꺼내놓습니다. 보통 대선 후보의 주목도가 커지는 시기가 됐음에도 식지 않는 화제성을 감안하면 그를 '정치 아이돌'로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국회 출입기자들은 보통 특정 정당을 전담합니다. 크게 여당, 야당 출입기자로 나뉘게 되죠. 야당 출입기자로서 가장 핵심 취재원 중 한 명이 국민의힘 당 대표입니다. 이 대표 취임 전에는 당 대표와 통화하는 게 무척 어려웠죠. 당 대표 자체가 일정이 많은 데다 그 아래 대변인, 정무특보, 비서실장 등 보좌해주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과 소통을 해도 충분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많은 출입기자들이 이 대표와 카톡, 전화로 실시간 소통을 합니다. 당대표 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티타임을 하거나 환담을 나누는 일도 무척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물론 이 대표도 곤란한 상황에서는 전화를 안 받거나 페이스북에 너무 많은 메시지를 쏟아내서 당황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언론과의 일상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점은 괄목할 변화입니다.
이 대표는 방송, 라디오 출연 섭외에 직접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대표가 직접 기자, 방송작가들과 출연 스케줄을 잡다 보니 보좌하는 이들조차 출연 사실을 뒤늦게 알곤 합니다. 이 대표가 녹취록 파동 등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등 당 대선 후보들과 갈등을 빚을 때는 보좌진이 이 대표가 따로 잡은 인터뷰 스케줄을 강제 취소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던 2019년 쓴 '공정한 경쟁' 책을 읽어봤습니다. 그는 경험이나 연륜이 아니라 실력을 통해 사회의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적립하자고 주장합니다. 시험을 통한 선발이 가장 공정한 방식이라고 설파하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부동산 폭등 등으로 불공정에 치가 떨리는 청년 세대 입장에서는 솔깃한 주장입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대표가 말하는 '능력주의'가 좀 불편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입니다. 부모의 소득, 자산에 따라 애초에 주어지는 기회 자체가 다르고, 학군에 따라 형성된 주변 네트워크에 따라 정보력 차이가 엄청나죠. 돈 많은 집안 자제는 일찌감치 해외 유학을 떠나는 등 학업 기회가 불공정한 상황에서 시험을 통한 공정이 올바른 잣대인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산업화, 민주화를 시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거대 담론을 제시한 셈입니다. 탄핵 이후 보수세력이 무너진 상황에서 30대의 젊은 정치인이 자신의 담론을 세우고 이를 밀고 나가는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민주당의 2030 정치인들이 운동권 출신 86세력(80년대 학번, 60년대생)과 친문(친문재인) 그룹의 발탁을 받아 차기 공천을 받고자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의정활동을 하고, 일말의 개혁 의지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시도는 박수받을 일입니다.
이 대표는 이슈를 선점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정치권의 한 인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대표는 새누리당 원외 당협위원장 시절인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다른 원외 당협위원장 4명과 함께 단식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이들의 단식 투쟁이다 보니 언론의 관심도가 크지 않았고, 단식자들 사이에서도 일주일이 지나자 그만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 이 대표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꿨다고 하는데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 사람들이 단식을 했다는 것과 얼마나 오래 했는지만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평가받으려면 단식 기간이 두 자리는 돼야 한다." 다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단식 기간 11일을 채우고 종료됐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분명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인입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만 40세라는 피선거권 제한이 없었다면 이준석 대표가 대선에 출마해 필승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벌써부터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정권교체 후 청와대 입성이나 입각, 서울시장 출마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됩니다.
다만 이 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그의 갈등 조정 능력에 있다고 봅니다. 최근 나아지고 있지만 당대표로서 대선 후보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거나 폄하성 비유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특유의 화법은 비호감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여성할당제 폐지, 페미니즘 논쟁 등으로 20대 남성 중심의 많은 팬덤을 확보했지만 그것이 곧 성별 갈등을 심화시킨 배경이기도 합니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인이 갈등의 중심에 서서 지지자를 선동한다면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통치술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겠죠.
또 본인의 성공 신화에 대한 믿음 탓인지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세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를 아끼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물을 좀 더 빼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 대표는 아직 젊으면서도 10년 간 가방 하나만 메고 방송과 행사를 돌며 정치권의 바닥 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에 높은 인지도와 그의 영민함은 큰 무기입니다. 이 대표가 어떤 정치인으로 성장할지 지켜보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에 더해 진보 진영에서도 자신의 어젠다로 이준석에 맞서는 젊은 정치인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