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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Oct 13. 2021

싸움이 싫은 유권자, 싸움을 붙이는 기자

정치부 기자와 유권자의 관심이 다른 이유

  "아이고 제발 정치인들 좀 그만 싸웠으면 좋겠습니다."(유권자)

   "A 후보가 본인을 비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정치부 기자)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제가 쓰는 기사와 시민들의 관심사가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곤 합니다. 정당에 가입해 있거나 커뮤니티 등에서 정치 뉴스를 다수 소비하는 일부 시민들을 제외하고 다수는 정치 뉴스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맨날 싸움질만 하는 거 보기도 싫다"는 반응이 일반적이죠.

  

  현실이 이런데도 반면 정치부 기자는 늘 정치권의 싸움을 조장합니다. 예로 들면 A 대선 후보에게 가서 'B 후보가 본인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은 뒤 다시 B 후보에게 'A 후보가 본인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질문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A 후보와 B 후보를 싸움 붙인 뒤 두 사람 간의 공방으로 기사를 내보냅니다.


  필자는 비슷한 정치 기사가 너무 많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정치 기사가 양산되는 비결이 여기 있는 셈이죠. 기자는 그날의 기사거리를 얻게 됩니다. 유명인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면 팩트 자체가 틀리는 일도 없으니 기사 쓰기에도 안전하죠. 정치인들도 자신의 이름이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되는 셈이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래입니다. 


  여기에 언론 환경이 많이 바뀌면서 기자들은 이제 매시간, 매일 단위로 뉴스를 생산해야 합니다. 기자들은 점점 가치 탐구와 논쟁 대신 현안 중심의 질문과 기사 작성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가장 편리한 선택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정치 기사에는 공방만이 남게 되는 거죠. 


   물론 이는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습니다. 언론계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월터 리프먼의 '여론'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있습니다. "진실과 뉴스는 동일하지 않다. 뉴스의 기능은 사건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고 진실의 기능은 감춰진 사실들을 밝혀내고 그 사실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시키는 것이다." 뉴스 자체가 진실 추구의 목적이 아니라 사건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라는 통찰은 뼈 아프게 다가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도 정치부 기자로서 늘 정책 대결을 주장하지만 막상 정책이나 어젠다를 중심으로 논쟁이 이어지면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하죠. 날 선 공방이 이어져야 흥미가 생기는 편입니다. 이런 풍토에서 정책 대결을 부르짖는 게 위선 아닌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반면 시민들은 취업난 해소, 군대 폭력 해결, 보육 환경 조성, 노후 복지 등 삶의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게 되죠. 하지만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는 찾기 힘드니 자연히 뉴스와 시민들 간의 간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뉴스공장으로 전락한 언론사가 시민들이 원하는 질문을 외면하게 되고, 신뢰를 잃는 악순환에 빠진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지는 차차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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