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가 낮은 기자가 처음 정치부를 출입하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걸 못 하면 소위 기본도 안 된 정치부 기자로 취급당할 수도 있습니다. 뭘까요? 바로 타자 치기입니다. 정치인의 말을 받아치는 걸 언론계에서는 '워딩'이라고 부르는데, 발언의 토씨나 분위기 그대로 살려야 합니다. 정치 기사의 대부분이 정치인의 말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무척 중요합니다.
필자도 국회 출입기자로 처음 발령을 받고 워딩이 느리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주말에 따로 한컴 타자연습을 하거나 평소 워딩을 자주 해야할 정치인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워딩이 워낙 중요한 탓에 내가 속기사인지 기자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도 계속해야 했습니다. 결국 연습을 거듭해서 정치인 발언을 거의 놓치지 않게 되고 나서야 워딩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워딩 이야기를 꺼낸 건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영미권에서는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10여 년 전부터 쟁점이 됐는데 모든 내용이 취재원의 말(주장)로만 이뤄지는 기사를 비판하는 표현이죠.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땡전뉴스'에서 보듯 한국 언론에서도 따옴표 저널리즘은 유례가 깊습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언론사는 유력 정치인 간의 싸움을 붙이면서 '뉴스공장'을 돌립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언론사가 특정 인물이나 세력을 비판할 때 조차도 기자의 말로 소화하지 못합니다. 상대 진영 대변인이나 반대 정치인의 목소리를 빌리곤 하죠. 유력 정치인을 기자가 기사로 직접 비판하기 부담스러우니 논평을 부탁해 이에 대해 '야당/여당은 ~라고 비판했다'라고 붙이는 식이죠.
정치 기사에서 익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핵심 관계자, 정통한 관계자, 여권/야권 관계자 등 온갖 종류의 관계자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취재원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익명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치 기사에서 익명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익명으로 나간 관계자의 발언에 대한 팩트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필자도 기자로 일하다 보니 "언론사가 책임 있게 사실 여부 가려내고, 익명 취재원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의 주장으로 승부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검증에 따른 부담이 워낙 큰 데다 당장 내일자 신문의 지면을 채우려면 누군가의 발언에 의존해야 하는 게 사실이죠.
당장 따옴표 저널리즘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최소한의 팩트 체크는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가령 대선 후보 토론회의 경우에는 후보 간의 주장을 설명하면서도 전문가의 분석도 곁들여서 후보자 발언의 팩트 여부를 가리는 거죠. 영미권 언론에서는 꽤 일반화된 방식인데, 인력이 많이 들고 공력에 비해 성과가 적다 보니 우리는 아직 잘 시행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언론사의 팩트 체크가 좀 더 활성화된다면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상대로 함부로 거짓말을 내뱉는 행태도 분명 줄어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