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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Oct 20. 2021

기자가 되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멀어진 이유

  기자 시험을 준비할 때, 언론사 입사해 기자가 된 이후에 수백 번을 들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넌 왜 기자를 하려고 하는 것이냐'라고 하는 물음이었죠. 그때마다 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약자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마이크가 돼주고, 강자들의 특권과 반칙을 고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비교적 오래전부터 기자의 꿈을 키워 왔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보사에 들어가서 2년 반 동안 학내 언론사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대학생 신분으로 작은 규모의 언론사 2곳에서 일하기도 했죠. 그리고 졸업 후에는 언론사 시험에 응시해 기성 언론의 기자가 됐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기자가 됐지만 제가 애초에 기자가 돼서 하고 싶었던 일들은 잘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기사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부 기자 초창기에는 나름 열심히 취재하고 발제했습니다. 다만 그때마다 '이 기사는 이미 나온 이야기 아니냐' '단순히 불쌍하다는 시각 말고는 무슨 가치가 있냐' '대중지에서 쓰기에는 너무 소수의 이야기 아니냐' 등 선배 기자들의 반론에 부딪혔습니다. 어쩌다 나가는 기사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묻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점차 선배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취재의 열정은 줄어갔습니다. 어차피 안 될 일이라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저는 그것을 발굴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도록 가교 역할을 할 직업적 책임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잘 찾지 않았습니다.


  권력 감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힘센 이들의 반칙에 대해 저항하고자 어느 정도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비판해야 할 사안 앞에서 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강한 권력의 힘 앞에 주저하기도, 광고주라는 이름으로 지레 포기하기도, 지난한 팩트 파인딩 과정에서 지레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친소관계 때문에 취재 시도조차 잘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과 가까이하다 보니 내재적 관점으로 그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작은 재산이 생기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져 갔습니다. 과거에는 비판 의식이 가득했다면 이제는 그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거죠. 독재자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으로 기자들을 탄압하면서도 남아 있는 기자들에게는 급여를 대폭 올려주고, 처우를 개선하면서 불만을 달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날그날 주어진 기사만을 처리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이 글에서 언론사의 의사결정 구조와 선배의 지적 탓을 했지만 저의 사실 핑계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같은 환경에서도 약자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권력을 치열하게 감시하고 견제하는 훌륭한 기자들이 있습니다. 결국 기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제 잘못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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