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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Oct 20. 2021

"딸 생각난다"며 흉기 인질극을 맨손 제압한 60대

보람 있었던 기사

  브런치 계정을 실명으로 전환했습니다. 누군가의 눈치 보지 않고 가감 없는 글을 쓰기 위해 그간 명으로 활동했지만 출간을 하면서도 익명을 고집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명으로 전환한 만큼 앞으로는 제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약 2년 간 사회부에서 사건팀 기자로 여러 사건사고 현장을 챙기고, 기획기사를 썼습니다. 그 기간 동안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 기사들을 많이 쓸 수 있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제 기사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독자의 엄청난 긍정적 피드백을 얻은 기사가 있습니다. 2019년 7월에 썼던 “딸 같은 매니저 위기 보고 그냥 몸 던져”… 패스트푸드점 난동범 제압한 60대(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229327)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당시 강남경찰서를 출입하던 저는 청담동에서 흉기를 들고 인질극을 벌인 난동범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인질극이어서 즉각 현장으로 갔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고, 출동했던 경찰과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의 퍼즐을 맞춰 갔습니다. 현장 상황은 듣고도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했던 60대 남성 분이 경찰이 오기 전에 맨몸으로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흉기를 든 난동범을 제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출동한 유도선수 출신의 경찰관도 자신도 방호복 없이는 못하는 일이라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듣기 힘든 영웅담이어서 해당 남성 분을 수소문했고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당연히 할 일은 한 것이다'라면서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공개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사건사고 기사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며칠 후 평소 친하게 지냈던 한 경찰 분께 해당 남성이 경찰서에 표창을 받으러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찰서에서도 마음만 받겠다는 분께 모범적인 사례는 널리 알리고 전파해야 한다고 설득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표창장 수여 현장에서 기다렸다가 나가는 길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 전화드렸던 윤다빈 기자입니다."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저도 고민을 해봤는데, 이런 소식은 많은 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만 인터뷰 시간을 좀 내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거 참 쑥스럽습니다."


  그렇게 근처 카페에서 1시간가량 인터뷰가 시작됐습니다. 이 분은 담담한 어조로 현장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얼굴과 손의 흉터가 그때의 위급한 상황을 짐작케 했습니다. 먼저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물었습니다. 안에서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 순간 비슷한 연배의 딸이 생각났다고 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매니저였다고 했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즉각 달려갔다는 설명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인터뷰 말이에 이 분께서는 "아내와 딸에게는 '왜 나서서 다쳤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그래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조심스럽게 실명 공개 여부를 묻자, 끝까지 "당연한 일을 했다"면서 김모 씨로만 써달라고 했습니다. 사진 촬영도 끝내 거부하셨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시냐고 하니 흉터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흉기 인질범과 난투극을 벌이면서 상처를 입은 김 씨. 얼굴 공개는 고 하셔서 측면 사진을 찍었다. ⓒ필자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팀장에게 내용을 보고하니 얼굴 사진은 아니더라도 흉기로 인해 다친 사진 정도는 있으면 독자들에게 좀 더 생생하게 전달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급하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김 씨께 찾아가 얼굴은 나오지 않은 채 측면과 손 사진만 찍겠다고 양해를 구했고, 급하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기사가 나간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조회수가 200만을 넘었고, 온라인 댓글이 1만 개에 육박했습니다. "이게 진짜 '딸 같아서'지" "이런 훈훈한 기사가 종종 올라왔으면 좋겠다" "어른다운 어른이십니다"는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악플없이 우호적인 댓글도 오랜만이었습니다.


  김 씨의 사연이 각종 커뮤니티로 사연이 퍼져 나가면서 방송사에서도 저를 통해 섭외 전화가 이어졌습니다. 김 씨께 후원금을 보내고 싶다는 문의와 무료로 치료를 해주겠다는 의사 분들의 글도 있었습니다. 혹시 방송에 출연하실 생각이 있는지 물었을 때 김 씨는 "방송에 나가서 얼굴이 알려지는 건 원치 않는다"라고 거절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후원에 대해서도 "참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기사를 잘 써줘서 고맙다"라고 했습니다. '기자 하길 잘했다'는 보람이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쓰고 나서 우리 주변의 영웅 이야기를 좀 더 발굴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됐습니다. 꼭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을 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담아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이 글을 빌어 그런 기회를 주신 김 씨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참 멋진 어른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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