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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Oct 20. 2021

살 떨렸던 국가보안시설 잠입 취재기

기억에 남는 기사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아찔한 기억으로 남는 취재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몇 번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국가통신시설인 KT 혜화 지사에 잠입 취재했던 일입니다.


  2018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건물의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일대 KT망을 사용하는 기기의 통신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물론, 가게 매장의 카드 단말기까지 먹통이 되면서 서울 강북지역과 고양시 일부, 북서부 수도권 일대가 사실상 마비됐습니다. 통화, 카톡, 문자, 결재 등이 모두 마비되면서 경제활동이 정지된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피해가 워낙 컸기에 이 사고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으실 것 같습니다. 


  사고 직후 KT에서 일했다는 한 관계자에게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KT 지사의 통신망 보안이 생각보다 부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테러 목적 등으로 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죠. 특히 서울 중심부의 청와대, 서울정부청사 등 국가 핵심시설을 비롯해 5G 망의 데이터 송·수신을 담당하는 가장 핵심 지사인 KT 혜화지사의 보안이 취약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건물 출입이 생각보다 쉬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저녁 늦은 시간 KT 혜화지사를 찾아갔습니다. 경비실 앞에 국가정보원이 관할하는 국가보안시설로 출입을 엄금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어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다만 경비가 1명뿐인 데다 정문에 출입을 통제하는 장치가 없어서 잘하면 진입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십 분을 밖에서 기다리다가 마침 몇몇 직원들이 밖으로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 일행인 척 잠입에 성공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이 관리하는 국가보안시설임을 알리는 문구. 이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필자 촬영

 

 제보자에게 내부 건물 구조를 대강 설명 듣긴 했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내부가 어두워서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거기다 국가보안시설에 침입한 행위는 자칫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서 심장이 터질 정도로 두려움과 긴장이 몰려왔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건물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없어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옥상에 도착한 뒤 비상구 계단을 이용해 한층씩 돌아다녔습니다. 휴대폰 라이터를 켜고 본 것들을 하나씩 찍고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건물 내부에서도 아찔한 상황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내부에도 경비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멀리서 보고 황급히 기둥 뒤에 숨기도 했습니다. 내부 출입문 하나를 여는데 살짝 건드렸는데도 경보음이 울려서 황급히 손을 떼야했습니다.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렵게 들여다본 건물 내부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중요한 시설들이 많았습니다. 경찰청 통신망을 담당하는 장비를 보면서 누군가 악한 의도로 서버 전원을 끄거나 기계를 훼손하면 큰일이 나겠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에서만 보는 국가 마비 사태라는 게 내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황급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경비원 분들의 눈치를 보면서 들어왔던 순서의 역순으로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선배 기자에게 취재 내용을 보고하려고 사진첩을 보니 웬걸, 사진 대부분이 흔들려서 내부 시설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손을 떨다 보니 사진이 흔들렸던 것이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KT 혜화지사 전경 ⓒ필자 촬영

 

  조만간 기사는 써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결국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쯤이야'라는 또 한 번 무모한 짓에 나섰습니다. 다음날 대낮에 대놓고 같은 경로로 침입을 시도한 것입니다. 마침 KT 혜화지사에 행사가 예정돼 있어서 외부인들이 출입을 하고 있었고, 전날보다 감시망은 약한 느낌이었습니다. 태연히 전날 루트를 그대로 밟아 내부를 출입한 뒤 사진을 제대로 찍었습니다. 전날에는 어둠 속에서 못 봤던 중요 시설물들을 자세히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KT는 한바탕 뒤집어졌습니다. 국가핵심시설의 보안이 너무 부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있었고, KT는 사과 입장을 발표한 뒤 곧장 출입 절차와 내부 보안 시스템을 강화했습니다. KT 사내 게시판에 제 얼굴과 함께 어떻게 내부로 출입을 했는지 설명하는 게시글이 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바로 다음날 후속 취재 형식으로 찾아간 KT 혜화지사는 외부인의 출입이 아예 불가능한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큰 특종을 했고, 기사로 인해 국가핵심시설의 보안이 강화되는 공익 효과까지 생기니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선배 기자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필름이 끊긴 채 집에 갔다가 열쇠와 지갑까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침 당시 혜화역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혜화지사를 지나갈 때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나름 열심히 기자생활을 했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물론 내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한 건가, 몸에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요.


  이때의 이야기는 'A급 국가통신시설 진입, 아무도 막지 않았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5&oid=020&aid=0003183361)와 '핵심시설 돌아다니고 경보음 울렸는데도 아무런 대응 없어'(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183367) 기사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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