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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빈 Oct 20. 2021

불법과 생계 사이...쪽방촌 성매매 알선 할머니들

잊지 못할 첫 기사 취재 이야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규모가 있는 언론사들은 보통 하리꼬미(수습기자가 경찰서에서 숙식하면서 취재하는 것을 일컫는 언론계 은어)가 끝나는 시점에 자신의 첫 기명기사를 쓰게 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PD들이 쓰는 표현을 따라 '입봉(데뷔작) 기사'라고 불리곤 하죠. 저에게도 잊지 못할 입봉 기사 취재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습기자 시절 소위 중부 라인(일반적으로 언론사 사회부는 서울 전역을 7~9개 라인으로 구분해 담당 기자를 정하고 사건사고를 챙김)을 맡아 서울 중구, 용산구 일대의 사건사고를 취재했습니다. 기사 아이템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서울역 앞에서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가오는 밤 11시경부터 70~8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서울역 앞 광장으로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저에게도 다가와 싼 값에 자고 가라고 권유하면서 은밀하게 "아가씨들은 돈만 주면 얼마든지 불러준다"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황급히 뿌리치고 갔다가 며칠 뒤 인근 남대문경찰서로 이동하다가 서울역 앞을 지나게 됐고, 지난번에 제의를 했던 할머니가 또다시 다가왔습니다. 


  문득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쓴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길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분들이나 '도를 아십니까'를 외치는 분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기까지 흘러간 사연을 들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용기가 없고, 두렵기도 해서 실제로 묻지는 않았죠. 기자가 된 김에 과감히 접근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자고 갈 것처럼 한 뒤 걸어가는 동안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습니다. 알고 보니 서울 남대문경찰서 인근 호텔, 대기업이 밀집한 지역에 쪽방촌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과거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었고,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 생계를 유지하면서 나이 들어간 분들이었습니다.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거나 사별 후 혼자 생계를 꾸려가는 할머니 등 사연은 다양했습니다. 노인 빈곤의 현실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방 한 칸에 기껏해야 2평 남짓. 두 사람이 눕기만 해도 꽉 차는 수준의 방이 하룻밤에 2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영업을 하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생계 수단이 막막한 분들이었죠. 이들은 돈을 더 벌고자 성매매까지 알선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 밤 자고 갈 것처럼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급한 일이 생겼다며 빠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할머니들 사이에 소문이 나 더 이상 접근이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그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남대문경찰서 경찰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경찰 분들도 경찰서 바로 앞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알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끔 벌금을 물리기도 하는데, 이 분들 생계도 워낙 어렵다 보니 처벌보다는 계도 위주의 활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공권력도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죠.


  이때의 이야기를 모아 '쪽방촌, 성매매 알선하는 할머니들'…"먹고 살려니 할 수 없지"(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6929697)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할머니들의 불법 영업, 이들의 사연, 경찰들도 어쩔 수 없는 현실 등을 복합적으로 넣고 나니 어떻게 결론을 맺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결국 '불법과 생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서울역 광장을 삶의 터전으로 잡은 할머니들. 이들의 하루가 이렇게 또 흘러갔다.'라는 말로 기사를 마감해야 했죠.


  기사가 나가고 반응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할머니들이 불쌍하다는 반응은 극소수였고, 기자가 앞장서서 불법을 옹호한다는 비판이 다수였습니다. 기사가 아니라 감성팔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불법 행위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취재하다 보니 그들의 입장에 경도돼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무엇이 답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입봉 기사부터 따끔한 맛을 본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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