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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목 Aug 10. 2022

모순(矛盾)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

첫 번째 글로 꼭 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속 내용을 빌려와 적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이유로 글을 쓰는 공간의 시작점을 찍는 것. 정말 멋지고 깔끔한 시작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오프닝 시퀀스처럼 이 공간을 멋들어지게 열어젖히고 싶었는데, 역시 무엇이든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


원래대로 흘러갔다면, 이 글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 위에 몸을 뉘었으니까. 평소라면 나는 또 휴대폰을 만지작대다가 잠에 들었을 것이다. 근데 하나의 모순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 정말 모순적인 생각이지 않은가. 그 모순적인 생각이 내가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근데 이것도 정말 모순적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글을 쓰게 했으니. 세상엔 이런 사소한 생각보다도 더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한 마디로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의 일원인 사람이 정말 모순적인 존재인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 불행한 삶을 감내하고, 삶의 의미를 갈구하지만 이내 길을 잃어버리는 존재. 사람의 또 다른 정의라고도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간다.


아무튼 지금의 모순은 나를 움직이게 했고, 이 공간에 글을 하나 남기도록 했으니 일단 좋은 것이라 결론지어야겠다. <시지프 신화>의 초반부에서 알베르 카뮈가 권태가 의식을 깨워 일으키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듯 말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일종의 권태로 볼 수도 있고, 그 권태가 지금 내가 적어 내려가고 있는 생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으므로, 그 얘기를 지금 상황에 적용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권태라는 주제는 알베르 카뮈가 <시지프 신화>라는 책 한 권을 할애했듯, 이야깃거리가 많은 소재이며, 생각을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 어려운 소재이므로, 다음에 따로 떼어내 이야기해야겠다. 위대한 작가도 책 한 권을 할애한 소재인데, 그 소재만을 위해 적어도 한 페이지는 온전히 내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앞서 언급한 모순적인 생각의 앞부분인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춰봐야겠다. 정말 많은 양의 정보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많은 선택지를 가지지만, 이로 인해 선택하기 더 어려워졌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현대 사회에 만연하면, 이를 지칭하는 햄릿 증후군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졌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나도 햄릿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것. 호기심, 도전 정신, 열정과 같은 긍정적 단어가 연상되면서, 동시에 우유부단함, 결정장애, 무지함과 같은 부정적 단어들도 떠오른다. 어떤 존재든지 하나의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생각에도 하나의 단어, 하나의 성격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앞서 얘기한 단어들 이외에도, 이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얼마든지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쳐 생각할 수는 있다. 아니, 세상에 완벽한 균형을 찾기란 힘든 일이므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바람과 같이 시시각각 달라질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자신이 처한 상황, 주변 환경과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는 순간이 있다. 근자감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찾아올 때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순간에, 이런 부류의 생각은 도전, 열정과 같은 성격의 단어들로 수식된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지면을 자욱하게 채우던 안개도 결국에는 걷히듯, 근거 없는 자신감도 결국에는 사라진다. 그렇게 더 이성적이고, 냉철해지면 이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나는 지금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게 아니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주어진 자원은 한정적이다. 시간도 한정적이고, 나의 에너지도 한정적이다. 그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여러 일에 나누어 쏟다 보면,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나무의 열매가 덜 달듯, 어떤 것도 제대로 된 결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 결국,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도 놓을 수가 없다. 물건에 깃든 추억을 떠올리며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의 성향이 이런 부류의 생각으로 이어진 것일까. 여러 선택지에 각기 다른 가중치를 두는 것이 절충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명백한 해결책이 되진 못하겠지만.


이와 같은 선택장애가 결국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 어떠한 것도 놓지 못한 채, 다양한 일에 관심과 에너지를 쏟다 보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다양한 일에 관심을 두고 도전하는 사람일수록,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일수록 쉽게 지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새로운 일에 불을 더 잘 지피지만, 동시에 더 쉽게 꺼져버린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주기가 그랬던 것 같다. 막 불을 태우다가도, 쉽게 꺼져버리는.


사람은 모순적인 존재다. 나도 그렇다. 지금 내가 이 공간에 전시하는 생각도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잘못된 것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걷는 듯 천천히>에서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라고 말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인데, 결국, 나의 사소하고 모순적인 생각이 위와 같은 여러 생각의 가지들을 펼치게 했듯, 모순은 새로운 생각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찰리 멍거는 더 일찍 현명해지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는데, 이런 고민들은 우리를 현명함으로 더 빨리 인도해주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나의 새로운 공간을 이 글이 열었고, 모순투성이인 사람들이 또 새로운 하루를 열 것이며, 저마다의 모순적인 고민들로 그들의 의식을 열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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