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많은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데,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일생동안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는데, 여기서 과정과 결과 중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목표의 추구는 당연히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목표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세상과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목표를 향해 너무 빠르게 내달리기만 하는 삶보다는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한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외에도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적절한 수준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는데, 적절한 수준의 선택지가 계속해서 제시될 수 있는 삶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돈과 능력이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이다."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에 등장하는 구절인데, 돈이 우리에게 적절한 수준의 자유를 제공해주고, 이로써 행복한 삶에 가까워질 수 있게 함을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인상 깊은 영상을 봤었는데, 올해 열렸던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의 일부를 찍은 영상이었다.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은 수준일 때 어떤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어본 질문에 워런 버핏은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에도 남이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의 가치는 줄어들지 않고,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 답변은 돈을 벌기 위해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까지의 논의는 능력, 더 나아가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행복한 삶에 가까워지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특정 분야에서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장인'이다.
사전에 따르면, 장인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장인정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들은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경우가 많고, 전통적인 방식을 지켜오는 경우가 많다.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 브랜드, 페라리, 벤틀리, 롤스로이스와 같은 럭셔리 완성차 브랜드가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나는 장인 정신하면 위스키 브랜드인 발베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발베니에선 보리의 재배, 몰팅, 증류, 오크통 제작, 숙성, 병입 등 위스키 제조의 전 과정이 수작업을 거친다. 발베니 증류소의 모회사인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는 장인정신을 제품의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하는데, 전 세계의 장인들을 지원하는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수작업이란 키워드도 발베니를 다른 위스키 브랜드들과 구분 짓지만, 발베니가 유난히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위스키를 만들어온 장인들의 존재 때문이다.
장인의 사전적 정의는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메이커스의 측면에 집중되어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장인을 탄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고 경험이다.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의 경험을 축적하며 생긴 노하우가 몸에 체화된 사람이라면 장인이라 불려 마땅하다 생각한다.
매뉴얼이나 교과서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을 형식지라 하며, 반대로 직접 해본 경험과 기억의 형태로 되어 있는 지식을 암묵지라 한다. 형식지는 암묵지에 비해 얻기 쉬우며, 기술의 발전은 더 나아가 형식지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더욱 늘렸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던 암묵지를 더 많은 지역으로 퍼뜨리기도 했는데, 어찌 되었든 암묵지는 타인과의 교류를 거쳐야 얻을 수 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의 경험을 쌓은 장인과의 교류가 암묵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지식의 탐색은 지식 포트폴리오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앞으로 어떤 분야에 한정된 시간을 쏟을지를 고민하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를 얕게 경험하는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특정 분야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야 대체 불가능한 능력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축적하는 경험의 양도 중요하지만, 방향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개인의 발전을 위해 지식의 탐색은 매우 중요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선 지식의 탐색과 활용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지식의 탐색 과정 중 선택한 분야에서 긴 시간 동안 시행착오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즉 축적의 방향이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곳을 향해야 한다. 결국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지식의 탐색, 경험의 축적, 그리고 도전이 필요하다.
위의 논의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도전을 기피하고, 비슷한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안정적인 직장 혹은 여러 사람이 향하는 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최근, 개발자 직군에 지나치게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디지털 전환은 개발자에 대한 수요를 계속해서 늘리겠지만, 모두가 웃을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여러 사람이 하나의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경쟁하는 것과 같다. 하나의 파이를 여러 사람이 나눠먹기보다는 각자 다른 파이를 만들어 먹는 것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 계속해서 줄어드는 내수시장은 니치마켓에서 성공할 확률을 계속해서 낮출 것이며, 높은 금리와 같은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대체 불가능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능력이 있다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장인 간의 교류를 늘릴 수 있다면, 혁신을 더 만들어내 사회 전체의 파이가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인이 되는 것이 개인이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그리고 장인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장인 간의 교류를 늘리는 것이 사회 전체가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각자만의 길로 나아가, 경쟁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자료>
1. 이정동. 축적의 길. 지식노마드. 2017.
2. 이리야마 아키에. 경영학 수업⌟. 김은선. 에이지21. 2019.
3. 최동훈. 고급차 시장에 부는 ‘장인정신 마케팅’. 이코노믹 리뷰. 2021.06.27.
4. 유선이.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한국 장인들과 '발베니 메이커스 캠페인' 전개. THE FIRST. 2021.05.25.
5. 반진욱. 질주하는 코딩 교육 스타트업…코딩 덕분에 불황 모르는 ‘개발자 사관학교’. 매일경제. 202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