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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목 Mar 19. 2024

이유(理由)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계속해서 고개를 들고, 그럴 때마다 이 공간을 찾는다. 글 하나를 완성하는 일이 드물고,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을 써내는 일이 많아 되려 스트레스를 얻고 갈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들러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는 일이 일상이지만, 기숙사로 돌아와 전혀 다른 종류의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오히려 나를 치유해 주는 듯하다. 머릿속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는 생각을 토 해내듯 글을 써내는 행위는 일종의 자기 개방(Self-disclousre)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서를 표출하는 행위를 일컫는 정서 표현과 달리,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려 하는 것을 자기 개방이라 하며, 지금의 감정이나 기분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 내기 위해 숙고하는 과정은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내려앉는 눈꺼풀을 붙잡으며 노트북 앞에 앉아 어떤 문장을 써내려 갈지 고민하는 것이 과연 자기 개방, 치유와 같은 목적에만 있을까. 만약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이유라면, 굳이 개방된 이 공간에서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없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 거라는 사실을 난 잊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매번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며 글을 쓴다. 제목을 짓는 순간부터 글을 갈무리하는 순간까지, 나는 계속해서 고민한다. 더 적절한 단어, 더 적절한 표현, 더 적절한 흐름. 그리고 이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사람이 이 글을 읽게 할까, 어떻게 하면 글의 시작점에 선 사람을 결승선에 닿게 할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내가 쓴 다른 글로도 발걸음을 향하게 할까와 같은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단어를 발굴하고, 이를 하나의 문장, 하나의 문단, 하나의 글로 조립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있다. 조립한 글이 독특한 리듬감과 견고함을 안고 태어났음을 확인하는 순간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조지 오웰 또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 미학적 열정을 글을 쓰는 동기 중 하나로 꼽았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중


하지만 조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즐거움은 그 순간과 처음 몇 번의 확인 과정에서 끝이 난다. 반복된 퇴고의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기특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은 글의 질적인 측면에 대한 것보다는 내가 창작한 결과물에 대한 애정에 가깝다. 그리고 내가 쓴 글에 싫증이 나는 순간도 찾아온다. 작가는 퇴고의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이 쓴 글을 많이 읽을 것이다. 뭉툭했던 글을 조금씩 다듬으며 애정도 생겨나지만, 싫증도 더해지고, 감동도 무뎌진다. 그 무뎌진 감동을 다시 살아나게 하고, 시들어 있던 글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것은 독자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다시 책상 앞 의자에 앉게 하고, 글을 쓰게 한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조지 오웰이 미학적 열정을 글을 쓰는 동기 중의 하나로 언급한 대목의 핵심은 아름다운 글이 탄생하는 순간의 기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체감한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다.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좋은 글에 다다르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 미학적 열정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듯하지만, 이는 글을 쓰고 있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중점에 두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글쓰기의 미학적 성취는 당장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독특하고 견고한 글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수많은 글쓰기의 경험이 필요하다. 좋은 글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글쓰기의 시간이 쌓임으로써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믿는다.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막연한 믿음으로, 나는 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찌 보면 우리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 확신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세상에서 버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믿음이며, 이 믿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꾸준한 실천을 통한 발전이다. 내가 한 뼘 더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믿음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주며, 종국에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게 해 줄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더 나은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머릿속에서 부유하는 생각을 끄집어내고 조립하여 또 하나의 글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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