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나는

아직 걷는중입니다.

by MSG윤결






다른 사람들의 어릴 적 집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집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시끄러운 건지,

다른 아이들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나처럼

불편한 맘으로 밥을 먹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이유도 모른 채 하혈을 했다.

대학병원에 가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원인을 몰랐다.

그렇게 하혈을 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축나고 있었다.

기저귀를 찬 채 누워 있는 내 몸보다

엄마 아빠의 고함소리가 집안 전체에 가득 채운날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집에 엄마가 없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종종 그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졌다.

아빠는 술 냄새를 들이켜듯 마시고 들어왔고,

집은 금세 폭발 직전으로 변했다.

엄마가 집에 있던 날도 다르지 않았다.

하혈이 심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다리가 피로 끈적하게 젖어드는데도 그 둘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울며 불며 아프다고 해도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했고,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는 내 말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터져버렸다.


제발 그만 좀 싸워! 나 아파, 아프단 말이야!”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죽어! 아프다는 소리 진절머리 나!”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순간 큰 충격이었다.


나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자식이 아닌데.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 싶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 어딘가에선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건 정말 잘못됐다는 걸..



피는 계속 다리 사이로 흘렀고,

내가 주저앉은 벽은 피로 물들었다.

집 안에는 여전히 욕설이 흐르고 있었다.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 좀 와줄 수 있어?”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 내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친구는 알았던 것 같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오겠다고 했다.

친구는 정말로 왔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을 뒤덮은 고함과 술 냄새를 본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를 이런 상황에 세워두는 것조차 미안하고 창피해서,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다리 사이로 피가 새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거실로 나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억지로 서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진짜 지긋지긋해! 이 집구석 나갈 거야! 둘 다 제발 그만 좀 해!


그 순간 부모님의 싸움이 멈춘 건 아니었지만,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고요함이 흘렀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약해질 것 같아서,

울면 또 무시당할 것 같아서. 대신 화장실 문을 닫고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피를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고,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친구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갈 곳도 없었지만 그냥 나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걸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버스정류장까지 몇 걸음 떼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고 두통이 심해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친구는 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음을 멈추라고도, 괜찮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곁에 있어 주었다. 그게 그날 나에게 가장 큰 위로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지만 나는 안다. 버스정류장 그 자리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 집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 나를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너무 불쌍하다


그날 이후 나는 부모의 싸움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상처는 계속 생겼지만 그 상처를 이겨낼 힘도 조금씩 생겨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울던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부모보다 먼저 삶의 잔혹함을 배웠고,

부모보다 빨리 책임을 배웠으며,

그들보다 더 어른스럽게 나를 돌보았다.


지옥 같은 집 안에서도 발버둥 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날의 피, 그날의 수치심, 그날의 울음과 친구의 침묵. 그 모든 것을 난 잊지 않았다.


나는 부서지지 않았다. 흔들렸고 다쳤고 쓰러졌지만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나는 필사적으로 삶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평생 잊지 않겠다고...

그날의 나를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노라고.



갈곳없는건, 참 서럽더라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울고 난 그날 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긴 했다. 갈 곳이 없었고,

몸도 계속 아파서 오래 버티기 힘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집 안은 조용했다. 싸움 직후의 흔적 같은 건 없었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날처럼 정리된 상태였다. 부모님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있었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때의 적막이 더 불편했다. 차라리 누가 큰소리로 뭐라고 해주면 덜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씻고 기저귀를 갈았다.

몸이 피곤했지만 머리는 멍하게 깨어 있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다들 각자의 방에서 조용히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피하듯 생활했다.


다음날 학교에는 평소처럼 갔다. 아프다는 이유로 쉬고 싶었지만,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게 더 싫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내가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하혈 때문에 계속 불편했지만, 수업 중에 표정을 바꿀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을 걸었고, 나는 그 분위기에 맞춰 그냥 대답했다. 전날 밤 버스정류장에서 울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일상은 그대로였다. 그 괴리감을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냥 ‘원래 이런 거겠지’ 하며 넘어갔다.


집에서는 조용히 행동하는 버릇이 생겼다. 큰소리가 들리면 몸이 긴장했고, 누가 조금만 날카롭게 말해도 반응이 빨라졌다.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먼저 상황을 계산하게 되었고, 어떤 말을 하면 싸움이 날지, 어떤 표정을 지으면 조용해지는지 그런 것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 행동이 습관이 된 건 억지로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생존하려고 자연스럽게 몸이 익힌 방식이었다.


부모님은 가끔 아무 일 없는 듯 나에게 평소처럼 대했다.

때로는 “너도 잘못이 있다”거나 “가정일은 원래 이런 거다” 같은 말을 던지기도 했는데,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허탈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지만, 그걸 표현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혼자 속으로 삼키고 넘겼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해결했다. 아프면 참고, 힘들면 조용히 아픔을 눌렀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날 친구에게 집에 와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내 삶에서 거의 유일한 ‘도움 요청’이었고, 그 이후로는 그런 용기를 다시 내기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의지했다가 그 사람이 당황하거나 불편해할까 봐 염두에 두게 되었고,

점점 관계에서도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 시기부터 버림받는 것에 대한 감각이 생긴 것 같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뒤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먼저 의심했고, 갑자기 관계가 끊길까 봐 조심했다. 가까워지는 것도 힘들고, 멀어지는 것도 겁나는 이상한 상태가 계속됐다.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걸 요구할 방법을 몰랐다.

누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언제 변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누가 차갑게 굴면 “역시 사람은 이렇게 변한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이 모든 게 의식해서 만들어진 성격은 아니었다. 그냥 어릴 때부터 반복된 환경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는 늘 주위를 살피고, 사람과 거리를 계산하고, 다정함을 경계하면서도 그걸 가장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삶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버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특별한 희망이나 큰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학교를 다니고,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았고, 속으로는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울던 그 아이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17살 때 담임선생과 교장선생이 나에게 했던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픈 학생을 챙겨주는 대신, 나에게 이상한 요구를 했다.

그게 명확하게 ‘돈 요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우리 부모님과 나는 그걸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아픈 나를 챙겨준것의 대한 요구엔, 합당한 설명도 없었고,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내가 그 요구를 거절한 뒤로 분위기는 확실히 달라졌다.

겉으로는 평범한 학교 생활처럼 보였지만, 뒤에서는 나를 향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다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담임과 교장이 내가 가까워지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하며

내 친구들의 부모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은 사실과 정반대였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성적이 좋았고, 정리도 잘하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그 친구들의 부모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계속 압력을 넣으니까 결국 친구들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어른들이 계속 그런 말을 하면 결국 아이들은 조용해지고 멀어진다.

그 상황을 겪어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친구들이 나에게 미안해하는 표정을 자주 봤다.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내가 짐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 상황을 더 끌고 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마음이 커졌다.

학교에 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었고,

집에 가면 집대로 불안한 상황이 반복됐다.

두 곳 중 어느 곳에서도 편하게 숨 쉴 공간이 없었다.


아프기까지 했으니, 버티는 건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학교를 가면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수업을 듣다가도 통증 때문에 집중이 안 됐다.

그런데 그걸 말하면 “관리 불가 학생”이라는 식의 시선을 받았다.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주지 않는 환경이었으니 더 오래 버티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퇴를 결정했다.

누가 도와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자퇴를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일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사람들은 자퇴를 하면 미래가 없어진다고 하거나, 불안정하게 살 거라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불안정한 건 이미 내가 매일 살고 있는 환경이었다.


자퇴한 후에도 마음이 편해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억지로 누군가를 마주할 필요는 없어졌다.

선생들의 말에 휘둘리거나, 친구가 눈치 보는 모습을 보고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조용히, 내 속도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생겼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라는 공간을 원래의 의미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보호받고, 가르침을 받고, 친구들과 관계를 쌓는데

나는 그 공간에서 오히려 ‘어른들의 이익’과 ‘책임 회피’ 같은 것들을 먼저 배웠다.

그걸 알게 되자 오히려 마음이 더 차가워졌던 것 같다.


그래도 그 결정 하나로 내 삶을 결정한 첫 순간이었다.

누구에게 끌려서 한 것도 아니고, 분위기에 밀려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때 내가 한 최고의 결정이었다.


돌아간대도, 난 똑같이 그랬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