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걷는중입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엄마를 마주하는 게 무서워졌다.
엄마 얼굴을 보면감정이 먼저 흔들렸다. 머릿속에는 늘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왜 그랬어?
그땐 왜 그렇게 했어?
그 질문은 대답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생각했다.
차라리 거리를 두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 멀어지면, 이 감정도 옅어질 거라고.
그건 착각이었다.
멀어질수록 ‘왜’는 더 또렷해졌고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애쓰다 실패했고, 용서라는 말에는 닿지도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엄마의 오랜 외도, 그 상대의 얼굴도 모르는 자식들까지 떠올리며
망가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라는 말이 내 안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굴러다녔다.
그때 알았다. 이 감정이 이미 끝까지 와 있다는 걸
오랜 묵은 기억들이 나의 뇌를 잠식해버렸고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망가짐의 끝에서 생각을 했다
이 기억을 안고는 앞으로 계속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이 기억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으면 잊혀지지않을까 하고..
그런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사람이 자살을 하면 다음 생에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끊어진다던 말.
그날따라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렸다. 다음 생도 없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정의 끝에 거의 닿아 있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맘껏 아파해도 돼.”
“같은 말이어도 괜찮아.”
“다 뱉어내도 돼.”
그 말은 나를 살리겠다는 약속도 아니었고
해결해주겠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처음으로 누군가가 도망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정말 묵묵하게 들어주었다,
처음이었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준비가 된 사람을 만난 게.
위로의 말은 내 삶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아 있었고,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방향을 바뀌었지만,
조금씩 천천히 무너지는 방식이 달라졌다.
혼자서 조용히 가라앉는 대신,
누군가에게 기대어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살아간다는 건 완전히 괜찮아지는 일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아픔을 옮겨놓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왜 그랬는지, 왜 나였는지,
왜 이런 기억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는 것.
늦어도, 느려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
완성된 회복은 없지만,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오늘이 있다
그리고 그 오늘들이 쌓여, 나를 조금씩 회복을 시키고있다
뱉어내면 잊혀질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