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걷는 중 입니다.
때로는 그때의 나에게
때로는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꼭 해주고 싶은 게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돈 오천 원을 꼭 쥐여주는 일이다.
많지도 않은 돈인데 그 돈이 있으면
그 아이는 그날 하루를 조금 덜 초라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슈퍼에서 제일 싼 컵라면 말고 김밥 한 줄을 고를 수도 있고,
벌레가 들어 있던 컵라면 같은 건
이제 그만 먹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고,
아이스크림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이건 다음에”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돈이 없어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외상이라는 단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고
배고픔을 숨기려고 괜히 바쁜 척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나는 배고픔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배고픔이 뭔지, 배고픔이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크는 내내 먹을수 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음식을 붙잡고 살았다.
지금 먹지 않으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음식은 남기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 했고
배가 부른데도 접시를 비우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건 식욕이 아니라, 습관이었고, 방어였고
어쩌면 기억이었다.
나는 가난했으니까 폭식을 했고
나는 가난함 때문에 비만이 되었다.
사람들은 살이 찐 이유를 쉽게 말한다.
의지가 약해서,자기관리가 안 돼서, 게을러서 등등
하지만 살이 찐다는 건 말이다.
몸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건 채워지지 않았던 시간의 무게고
받지 못했던 관심의 흔적이고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던 날들의 기록이다.
나는 사랑이 부족했고 관심을 받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간절했다.
그래서 때로는 차라리 욕이라도 듣고 싶었다.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미움이라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랬다, 우리 부모님은 나의 배고픔으로 인한 폭식을
고작 식탐으로 치부했다.
“왜 이렇게 먹어?”
“그만 좀 먹어.”
“누가 굶겼니? 그러다 돼지된다.”
그 말들은 훈계처럼 던져졌지만 그 안에는 질문이 없었다.
왜 먹는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는 배가 고파서 먹은 게 아니었다.
배는 이미 부른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늘 비어 있었다.
먹고 나면 조금 조용해졌고 씹고 있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잠깐의 고요가 내겐 필요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식탐이라고 불렀다.
식탐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다.
아이의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고
어른의 부재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니까.
그저 “쟤는 원래 저래”라고
정리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믿게 됐다.
배고픈 것도 많이 먹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숨겼고
더 몰래 먹었고
더 빠르게 먹었다.
들킬까 봐.
또 혼날까 봐.
또 이상한 아이로 보일까 봐.
그러다 보니
배고픔보다 먼저 온 건 죄책감이었고
포만감보다 오래 남은 건 수치심이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생긴 허기를
사람들은 살로만 보았다.
그 살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음식을 좋아했던 게 아니다.
음식이 나를 배신하지 않았을 뿐이다.
불러도 오지 않는 사람들 대신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받아줬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붙잡았다.
그게 식탐이라면
나는 너무 오래 굶어온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작은 아이에게 , 배고픔도 외로움도 폭식도
모두 같은 말이었다.
“나 좀 봐줘.”
“나 여기 있어.”
“나 혼자 두지 말아줘.”
그런데 아무도
그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통해 나를 달래는 법을 먼저 배웠고
사람에게 기대는 법은 아주 늦게 배웠다.
지금의 나는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그때의 어른들을 대신 혼낼 수도 없다.
그래도
돈 오천 원을 쥐여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굶지 않아도 된다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그렇게까지 참지 않아도 되는 아이라고.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배고파서 먹은 게 아니라 사랑이 고파서 먹었던 거라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꼭 배고프게 살지말라고
알려주고싶다.
마음이 고장났던 나에게 치유해주고 픈 내가.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