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걷는 중입니다.
일곱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저수지를 구경하러 가자고 했다. 그때의 나는 엄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았다.
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묻지 않았다. 엄마가 가자고 했고, 그게 전부였다.
나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히 묶었다. 그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서는 기분은,
언니가 오면 꼭 자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들떠 있었다.
대문을 나서자 하얀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창문이 내려가고 머리가 긴 아저씨가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엄마가 열어주는 뒷문을 따라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이미 앉아 있었다. 아이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차는 출발했다. 엄마는 앞 좌석에 앉아 있었고, 나는 말을 걸까 하다가 그만 보고 말았다. 변속기 위에 올려진 아저씨의 손, 그 위에 겹쳐진 엄마의 손.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깍지까지 껴 있었다.
나는 물었다.
“엄마, 왜 아저씨 손을 잡고 있어?”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손이 아프대. 그래서 주물러 주는 거야.”
이유를 들었는데도, 갑자기 가슴 안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 두 사람의 손 사이에 손을 끼워 넣고 억지로 떼어 놓았다.
그때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아빠! 엄마한테 데려다줘! 집에 가자고!”
아저씨는 아이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녁엔 뭐 먹고 싶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렸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 불편하다는 것을. 우리의 바람과 상관없이 차는 저수지로 향했고, 결국 어른들이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
엄마는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주며 눈썹을 살짝 움직여 웃었다. 내려도 된다는 신호였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이어서 엄마는 남자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저수지 안쪽 길 끝으로 달려가 버렸다.
엄마는 나에게 그 아이를 따라가 보라며, 같이 놀아주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너도 엄마가 가자고 해서 온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왜 데리고 온 줄 알아?”
“몰라. 저수지 구경 가자고 해서 왔어.”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는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세게 밀쳤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엄마가 사준 예쁜 옷은 찢어졌다.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멀리 있던 어른들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아저씨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예쁜 옷을 사주겠다고, 괜찮다고 하며 나를 안아주었다. 남자아이는 아무 말 없이 돌멩이만 집어 저수지로 던지고 있었다. 결국 아저씨 입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엄마는 아저씨를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고, 아저씨는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한 뒤 다시 차로 돌아가자고 했다.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먼저 남자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아저씨와 아이가 내렸다.
그 사이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넌 집에 먼저 들어가 있어. 아빠 오기 전에 돌아올게.”
나는 같이 가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단호했고 무서웠다. 더 말하지 말라는 얼굴이었다.
잠시 뒤 아저씨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허둥지둥 다시 나와 차에 올랐다. 이제 나를 내려주러 가면 된다고 엄마가 말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조금 있다가 엄마와 할 말이 있어서 그렇다며 대화가 끝나면 엄마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가까웠다. 같은 동네 하지만 다른 구역일 뿐이었다. 집이 보이자 엄마는 내리라고 했다.
나는 다시 울음을 삼키며 물었다.
“엄마, 엄마도 지금 같이 가면 안 돼?”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 문 앞에 서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하얀 차를 바라보며,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날의 일은 엄마에게는 기억에도 없는 일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입고 있던 옷, 냄새, 숨소리, 눈을 피하던 얼굴까지.
어려서 모를 거라 생각했던 엄마는 착각했다. 나는 알았다. 그 두 사람이 정상적인 사이가 아니라는 것, 서로의 집에서는 알면 안 되는 사이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나는 그 남자아이를 다시 만났다. 같은 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전학을 가기 전까지, 우리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때의 그 어른들은 아이들과 같이 만난 이유가 무얼까?
그 이유는 나이를 먹고 성인이 돼서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을 이용한 것뿐이다.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