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나는

피할수 없어서 부딛혔다.

by MSG윤결




나는 늘 나의 상황을 피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회피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그럴듯해서, 그냥 도망쳤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아무것도 치유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바른 인생을 살 수 있는 어른이 아니었다.

어쩌면 올바르게 살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복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낳아준 것만이 부모는 아니라는 말이 있다. 올바르게 키워주고 사랑도 주고 영양분도 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라는데 모든 것이 결핍에서 자란 나는 올바른 성인이 될 수 없었다.

관심이 받고 싶던 아이,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픈 아이, 주목받길 바란 아이 등등

결국엔 사랑이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도 나에게 관심을 주면 친구가 돼주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어른이 되었네, 그런 상황에서 참 잘 컸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한 번도 그들에게 진실되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올바른 어른도 참 잘 큰 것도 아니라고, 그냥 나의 모습을 감추려는 겁쟁이 일 뿐이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엄마랑 싸운 적이 있었다. 그 싸움은 꽤나 큰 싸움이었고

엄마에게 도대체 그 어린 우리에게 왜 그랬냐고, 나는 왜 낳아서 그런 고통 속에 살게 했냐고

왜 그랬냐고 소리를 지르며 따진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차분해졌다.

한참을 한숨 쉬며 앉아있다가 울고 있던 나를 보며 말을 했다.


"살고 싶어서, 나도 여자로 살고 싶어서.. 그랬어. 지긋지긋한 시댁, 남편 싫어서 자식들 고생시켰어.

네 말이 맞아,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돈도 안 벌어오는 남편, 툭하면 남편 과거 이야기하면서 날 구박하는 시어머니, 생각 없는 니 고모들까지.. 엄마 어렸어, 언니 낳았을 때가 21살이었어 어리고 어린 내가 자식 낳고 잘 살아보겠다고 그래도 버티고 또 버티 살았어, 첫이 낳고 몸조리하고 누워있는데 시어머니가 그러더라


(내 아들, 너 만나기 전에 만난 여자가 있었는데 걔를 그렇게 때리더라고, 그러더니 그 여자가 도망가버렸어!

그러고 너랑 선보더니 조건이 맞는다고 결혼한다데 우리 집에도 장님 하나 있고, 니네 집에도 귀 안 들리는 동생 둘이나 있다고 어째 결혼시켜야지 근데 우리 아들 그 여자애를 참 좋아했어~ )


라고, 지긋지긋한 이 집구석 왜 하필 그런 이야기를 몸조리하는데 머리 위에 앉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그냥 꼴 보기 싫었어. 그 어떤 며느리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무도 이해 안 하고 안 살아.

어느 날은 아빠가 술이 곤드레만드레 들어와서는 나보고 어느 놈이랑 바람냤냐고 막 그러는 거야

그래서 바람은 무슨 바람이냐고, 누가 그러더냐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러더래,

내가 바람났다고 다른 놈한테 실실 웃음 팔고 다닌다고,

그때는 너네 언니 낳고 얼마 안돼서 그런 생각조차 한적 없었어.

근데 그 와중에 바람피우는 년은 매가 약이라면서 시어머니가 못이 박혀있는 각목을 들고 오더라?

그걸로 자기 아들한테 나를 때리라는 거지 뭐야 그걸로 두들겨 맞다가 머리에 못이 박힌 거야, 그대로 쓰러져서 병원 실려갔어,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 고생 한번 안 하고 살던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게..

남편 사랑 한번 받지도 못하고 내가 왜 이렇게 매타작에 욕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지, 시댁에선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도 않았어, 그러니 어떻게 해 도망갔지 살기 싫어서 도망갔어 그렇게 도망가면 친정식구들이 찾아서 다시 데려다 놓고 데려다 놓고, 내가 도망가는 이유를 말해준 적 없었으니 내가 왜 그러나 싶었을 거야,

나도 여자니까.. 엄마도 여자니까, 살고 싶어서 그랬어"


눈물범벅이 된 엄마 앞에서 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땐 애써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식을 그렇게 고생시켜? '라는 내 이기심이 엄마를 이겼다.


"그런다고 그 지난 시간, 내가 엄마를 이해할 것 같아? 나는 죽어도 죽어서도 다음 생에도 엄마 절대 이해 못 해.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리는 자식을 손으로 쳐가면서 저리 가라고 다른 남자 차 타고 가버리고,

아파서 학교 조퇴하고 왔을 때도 당연히 집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집으로 왔더니, 아무도 없고 집 문이 잠겨서 수십 번 전화를 하는데도 안 받고, 한참 있다 들어와서는 그 사람 오니까 나보고 옥상으로 도망가라고? 내가 아프다고 울고불고했는데도 얼른 그 사람 오니까 옥상으로 가라고!!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 버렸잖아.

그때 내 심정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 집을 나서면서 계단으로 내려갈 때 마주친 그 남자를 보고 욕이 나왔는지 한 번이라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 엄마는 엄마가 여자가 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있고 행복할 때 단 한 번도 자식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야, 그냥 자식은 아들일 뿐이고 나는 그저 짐일 뿐이야"


라고 질러버렸다, 그동안의 모든 힘든 이야기를 던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테니까.

그날 우리는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누가 더 상처받았는지, 누가 더 불행했는지 겨루는 싸움 같았다.

그리고 그 싸움에는 끝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상황을 피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대면하고 말았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해하려는 순간, 그 모든 시간이 정당화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것이고, 그 안에서의 선택 또한 엄마의 몫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로 남겨진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의 삶을 말이다.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