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나는

끼리끼리

by MSG윤결


끼리..끼리?



비슷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가난한 사람들끼리,
부자인 사람들끼리,
그 친구의 그 친구, 결국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만남.

어떤 말로 표현하든, 나는 ‘끼리끼리’라는 말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있다.


“저런 애들이랑 노는 거 아니야.
저 애들 봐봐, 다 끼리끼리 놀잖아.”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의 학부모가 한 말이었다.

왜 굳이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함께 놀고, 웃고, 잘 지내던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에 보기엔 ‘비슷한’ 아이들이었다.

아빠가 없거나, 엄마가 없거나,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거나.

어쨌든 어른들이 보기엔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가정환경의 아이들.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을 어른에게서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의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건 그 학부모의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집에 가서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 끼리끼리 논다는 게 뭐야?”


아빠는 잠시 나를 보더니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보던 신문을 접고, 안경을 벗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왜 그런 걸 물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누가 누구랑 놀면 안 된다는 말, 어른들이 웃지 않으면서 하는 말,

그리고 그 말이 왜인지 모르게 나쁜 말인 것 같다는 말까지 전했다.

아빠는 한참을 듣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그건… 자기랑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묶어버리는 말이야.”

“나쁜 말이야?”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저어주기도 하지 않았다.


“말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그 말을 쓰는 마음이 문제일 때가 많지.”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은 원래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기도 해. 근데 그걸 내려다보면서 말하는 순간,
그 말은 사람을 가르는 칼이 돼.”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됐다. 우리가 함께 놀던 아이들이 비슷했던 건 가정환경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쉽게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걸. 어른들이 말하는 ‘끼리끼리’ 속에는

설명되지 않는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고, 나는 그 선 바깥에서 누군가를 가볍게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설명하는 말들에 조금 더 조심하게 되었다.
특히, 너무 쉽게 쓰이는 말들에 대해서 ‘끼리끼리’라는 말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들린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날 유치원에서 들었던 어른의 목소리와

아빠의 잠깐이지만 깊은 숨소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을 가르는 말은 대개 아주 담담하게 시작된다는 걸, 누가 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만큼이라도 그런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는 거야. 결국엔 지같은 것 옆에 지가 서있는 것처럼"

누군가 했던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사람도 끼리끼리 만나는 걸까. 그 입이 재앙이라 재앙인 사람을 만날 것처럼.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