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지지 않을 편지
오늘도 어김없이 카페에 앉아 엄마에게 편지를 써요.
엄마는 모르겠지만, 나는 브런치에 엄마에 관한 글들을 쓰면서 생각이 참 많아졌어요.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애썼던 시간들, 엄마는 왜 그랬을까, 정말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나는 끝까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까.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게 돼요.
가슴 아픈 일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은 딱 하나예요.
그래서 엄마의 아들은 누구의 아들이에요?
40년을 이어온 그 상간남의 아들인가요, 아니면 46년을 부부로 살아온 아빠의 자식인가요?
엄마의 아들은 참 불쌍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이 사람에게도 아빠, 저 사람에게도 아빠라고 불러야 했고 두 사람 사이를 메뚜기처럼 오가며 누가 진짜 아빠인지도 모른 채 그저 엄마가 시키니까 부르고 살았잖아요. 그 아이도 엄마에게는 돈벌이 수단이었나요? 아니면 그렇게까지 원하던 아들이어서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싶었던 존재였나요?
언니와 나는 정말 궁금했어요.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았죠. 이유는 하나였어요.
‘엄마의 아들’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굳이 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상자를 열어서 더 큰 불행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와 같은 성씨로 올라 있는 그 남자아이는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사람일 거라고 믿고 살아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엄마는 우리가 성인이 된 뒤부터 참 노골적으로 차별하더군요.
아들이 오면 우리는 못 오게 하고, 우리가 오면 아들은 못 오게 하고. 서로를 절대 마주치지 못하게 했잖아요.
엄마,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그리고 엄마, 엄마의 아들은 제정신으로 잘 자란 것 같나요?
제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더군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거짓말이 습관처럼 몸에 밴 사람. 남을 속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이기적이고, 자기 잘못조차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 아주 형편없는 어른으로 자라 버렸더군요.
그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나르시시스트, 그리고 허언증 환자.
정말 그 말이 딱 맞는 사람으로 컸어요. 자기가 불리하면 한없이 불쌍한 척하고,
자기가 유리하면 세상 거만해지고, 자기 멋에 취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 참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아들답게 자랐더군요.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엄마의 아들이 9살이었고, 내가 17살이었을 때의 일이에요. 혹시 기억나세요?
아니죠. 기억날 리 없겠죠.
그날, 아들이 다음 날 친구들이랑 에버랜드에 간다고 했잖아요. 동네 친구들이랑 가는 거니까 용돈을 주면 좋겠다고요. 그 이야기는 며칠 전부터 이미 나왔던 것 같았어요.
엄마는 다 알고 있었겠죠. 침대에 누워 있다가 “아들~” 하고 부르셨잖아요.
내가 식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아들, 이건 아빠가 우리 아들 친구들이랑 놀러 가라고 보내주신 돈이야.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
그러면서 어린아이 손에 30만 원을 쥐여주셨죠. 참 놀라웠어요.
에버랜드에 간다고, 그 어린아이에게 30만 원이라니,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저도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나가기 전에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죠.
“엄마, 오늘 저녁에 애들 만나기로 했는데 만원만 주세요.”
엄마, 그때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세요?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요. … 역시 기억 안 나시겠죠.
나는 만원을 달랐다가 뺨을 맞았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죠.
“돈도 없어서 힘들어 죽겠는데 넌 허구한 날 돈 맡겨놨냐? 돈 달라는 소리만 하니?”
언니랑 통화 중이었는지 전화기에 대고도 말했잖아요.
“진짜 지긋지긋해 죽겠다. 저년이 돈도 없어 힘들어 죽겠는데 만원을 달라잖아. 무슨 돈 맡겨놨냐고.”
불과 5분 전, 아들에게 30만 원을 건네줄 때는 돈 때문에 힘들지 않으셨나 봐요.
십만 원도 아니고, 이만 원도 아니고, 고작 만 원 달랐다가 뺨을 맞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욕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내가 만 원을 달라는 말이 그렇게까지 듣기 싫었던 걸까요?
아니면 아들에게 돈 주는 걸 보고 내가 덩달아 따라붙는 사람처럼 보였을까요?
엄마, 내가 뺨을 맞아야 했던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요?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나는 아빠의 딸이고 쟤는 그사람 아들이구나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나는 요즘에도 문득 떠올라요, 엄마가 했던 말들과 행동, 그리고 인터넷에 쳐보면 나오는
교수의 이름, 학교, 뉴스들까지요. 그렇지만 전 여태 살면서 그분께 전화 한번 한적 없었어요.
왜냐면요, 그게 내가 엄마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제 나는 하나씩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면서 엄마와 그 사람을 지키지 않으려고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더라고요.
엄마, 오늘도 하루가 평안하셨나요?
오늘도 엄마의 아들과 즐거운 식사 하셨나요? 그래서, 결혼식에는 어떤 아빠를 앉힐 생각이신가요.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