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예전에는 무슨 일만 생기면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곤 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혹시라도 오해가 될 만한 부분은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하려 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나를 오해한 감정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설명이 길었고, 말도 점점 많아졌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는 상황이 너무 싫었고,
오해받지 않기 위해 해명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유도 설명도 없이 그냥 인연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즉, 손절.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보면, 그런 사람들은 쌓아두었다가 터뜨리는 대신
아예 관계를 끊는 방식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오해를 했어도 말할 필요가 없는 걸까?
아니면 굳이 힘을 들여 대화하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뜻일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면, 정작 그 사람들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행동이 스스로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유 없이, 설명도 없이 손절을 택한 사람들을
정이 많다, 멘털이 약하다, 회피형이다 등으로 표현하곤 한다.
정말 그 말들이 맞는 걸까?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누구보다 착하고, 배려심이 많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늘 손절을 당하는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이유도 모른 채 손절을 당했고,
그다음에는 4년을 알고 지내던 동생에게도 같은 일을 겪었다.
그때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기분 나쁜 건 없고, 무슨 일도 없고,
그냥 요즘 사는 게 바빴다는 말.
핑계도 참 다양하다고 느꼈다.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말해주면 좋겠고,
기분이 상한 게 있었다면 이야기해서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지만
다들 같은 대답뿐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오해하지 마. 요즘 좀 바빴어.”
그렇게 말하니,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며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상황에 대해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결이 달랐던 것 같아. 그 사람들이랑 너는 결이 좀 달랐던 것 같아.”
그리고 덧붙였다.
손절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조금씩 시기나 질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자기들은 늘 잘 풀리지 않는데,
나는 누군가 도와주는 것처럼 일이 해결되고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고, 그런 모습들이 시기질투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도 한동안은 계속 그동안의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말 내가 뭘 잘못했을까, 혹시 모르게 상처를 준 말이 있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 행동이 있었던 건 아닐까.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봐도 대놓고 무례하게 굴었던 적도,
선을 넘는 말을 했던 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늘 조심했고, 맞추려고 애썼고, 관계가 틀어질까 봐 내 감정을 먼저 접어두는 쪽이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잘해주면 오래가는 줄 알았고,
이해해 주면 관계는 유지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늘 혼자 남아
이유를 추측해야 했다.
그 사람들이 남기고 간 침묵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설명하려던 나의 습관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오해를 바로잡으려 애쓰는 것도,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으려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을 한다고 해서 상대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말들은 결국 허무해질 뿐이다.
오히려 나만 더 지치고, 또 한 번 스스로를 깎아내리게 될 뿐이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떠난 사람들이 나를 버린 게 아니라,
그 관계가 더 이상 그들의 자리로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내가 너무 밝거나, 너무 솔직하거나, 혹은 너무 다른 결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처럼 모든 걸 설명하지 않는다.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도 않고, 오해를 풀기 위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지도 않는다.
남고 싶은 사람은 결국 어떤 모습의 나여도 남는다.
떠날 사람은 아무리 조심해도, 아무리 잘해줘도 떠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적어도 이제는 ‘왜 나는 항상 손절을 당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스스로를 먼저 의심하지는 않게 되었다. 관계는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고,
설명만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결이 맞는 사람들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곁에 남는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지금, 나는 조금 덜 외로워졌고 조금 더 나를 믿게 되었다.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