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서를 작성한 날.

by MSG윤결




살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날들 연속으로 찾아왔다.

돈으로 힘들면, 열심히 벌어서 해결하면 되고, 사람으로 힘들면 그 관계를 조용히 정리하면 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가족 때문에 힘든 일은 참으로 어떻게 도망칠 곳이 없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 가족에게 받은 배신감,

자꾸 반복되는 일들이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었다.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난 이렇게 힘든데도 버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참 많이 물었다.


차라리 죽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고,

현 생에서의 가족들은 다음 생에서도 만나기 싫으니

내가 그 연결고리를 끊겠노라고,

그 빌어먹을 생각을 또 하고 있었다.


하지만 힘든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족, 돈, 사람, 일—모든 것이 동시에 무너지는 타이밍에

‘지금 이 고통이 끝나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생각까지 닿았다.


그만큼, 정말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한참을 울고 앉아있던 그때,

'살고 싶다며? 살아서 해결하고 싶다며? 그런 마음은 어디 간 거야?'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죽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죽었는지는

그 사람들이 알아야 나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종이와 펜을 챙겨서 창가에 앉았다.

하얀 종이 위에 글을 하나씩 적어 넣었다.

생각보다 담담했다.


< 유서 >

미안합니다. 혹시라도 나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말로 너무 힘든 삶이었어요.

이제는 그 힘든 삶, 힘든 인연, 그만 끊어버리고 싶습니다.

가족이 있어도 이 생은 혼자였어요, 나를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고 항상 이용만 당하고

가족들 때문에 주변 친구들의 신뢰도 잃었어요,

언니, 내 주변 사람들한텐 나 몰래 빌렸던 돈 빨리 해결해 주길 바라, 그리고 나한테 빌렸던 돈은

나의 영업장 정리할 수 있게 k친구에게 돌려줘

가족들이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손발 다 걷어 함께했었어,

당신들은 내가 힘든 일 생길 때 무시하기 바빴지, 그런 당신들과는 더는 가족으로 남고 싶지 않다고

판단했어, 엄마, 아빠, 나 먼저 가요. 우리 이번생에서만 인연이길 바라요.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아 정말 미안해, 너무 오래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맡기고 가서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잘못 태어난 내 삶이, 너무 억울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걸 다 끊고 이생을 그만할 겁니다.

당신들도 너무 억울해마세요, 당신들 때문에 이번생이 망한 겁니다.

가족은 나에게 한 번도 빛난 적이 없어요. 그런 가족들 때문에 나는 삶을 포기합니다.

잘들 사세요, 당신들끼리 편히 말이죠.

이만.


이라고 적었다.
적는 동안에도, 다 적고 난 뒤에도 얼마나 울었는지는 내 두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퉁퉁 부은 눈은 흰자까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유서라는 게 반드시 정해진 형식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누군가를 의식해서 쓴 글이 아니라
그저 내 가슴속에 오래 뭉쳐 있던 말들을 그대로 쏟아낸 글이었다.

유서를 써놓고 나니 억울했고, 동시에 무서웠다.
죽음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죽기에는,

내가 너무 억울했다.
그 억울함이 죽음보다 위에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나는 이 삶을 이어서 살아가겠다고 결론을 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당하고만 살지 않겠다고.

돌이켜보면 나의 유서 작성은 꽤 많은 것들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이기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스스로 생을 끊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는 가족때문에 우울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인생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나랑 안맞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냥 지나가면 된다. 맞지않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는건 미련한짓이다. 그리고

딱 한 번만, 밖으로 나가 해를 두 눈으로 쳐다보면 눈이 부셔 제대로 뜨기도 힘들지만
그 빛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눈앞에 검은 반점들이 둥둥 떠다닌다.
그 순간 불편함이 밀려오고, 어지럽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오늘로 끝내려 했던 인생이

잠시 잊힌다.


오늘이 지나고,
또 오늘이 지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조금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분명히 온다.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윤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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