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설명하지 못할 일들이 많아

by MSG윤결



남들보다 조금 직감이 좋은 것뿐

남들보다 조금 눈치가 빠른 것뿐

남들보다 조금 눈이 다른 것뿐


나는 세상에 살면서 설명하지 못할 일들을 많이 겪고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밤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다

어느 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아주 오래된 시골집이 나왔다.
전기도 없는 것처럼 집 안은 캄캄했고, 밖은 달빛조차 없는 밤이었다.
방 안에는 나와 할아버지가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이불을 펴고 자려고 하고 있었다.
집 안의 모든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아… 결아…”


그 순간, 이상하게도 전혀 의심이 들지 않았다, 왜냐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할머니…?”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할아버지가 내 손목을 탁 잡았다.
생각보다 힘이 세서 움찔했다.


“일어나지 마. 문 열지 마라.”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방문의 옛날식 링 손잡이 두 개를 하나하나 걸어 잠갔다.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나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 밖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문 좀 열어봐라 할머니 왔다. 할머니는 어디서 자나~?”


너무 평소랑 똑같은 말투라서, 나는 성큼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문 열어드려야지…”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얼굴을 확 굳히고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그런 소리 해!
죽은 사람이 어디서 문을 열어달라그래!!”


그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왜 죽은 사람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아주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열지 마라. 열면 안 된다.”


그 순간, 문 밖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할머니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지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문 열어야지!!! 왜 방문을 안 열어!!! 할머니 여기 있다니까!!!”


그러더니 창호지 방문을 쾅—쾅—
주먹인지, 몸인지 모를 무언가로 문을 미친 듯이 치기 시작했다.
문이 덜컹거리며 흔들렸고, 링 손잡이가 철컥거리며 곧 문이 열릴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무서워… 제발 문 열어줘… 할머니잖아… 할머니잖아…”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를 끌어안고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숨이 막힐 만큼 꽉, 그러나 떨림이 그대로 전해질만큼 불안한 손이었다.


“소리 내지 마라.”

“절대 대답하지도 말고, 보지도 마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 밖의 소리는 더 거칠어졌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결아—!!! 왜 말을 안 하냐!!!

할머니 춥다 문 좀 열어라!!!”


무언가 창호지가 안쪽으로 볼록하게 밀려 들어왔다.

마치 얼굴이 문에 바짝 붙어 있는 것처럼, 숨소리 같은 것이 종이 너머로 들렸다. 문고리가 미친 듯이 덜컹거리며 흔들렸고, 쇠고리 두 개가 서로 부딪히며 요란한 쇳소리가 들렸다.


나는 할아버지 품 안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울음도, 숨도, 심장 소리도 다 들킬까 봐

몸 전체를 돌처럼 굳힌 채 가만히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소리쳤다.


“할머니!!!”


그 순간, 그대로 잠에서 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온몸에 식은땀이 나 있었고 꿈이었는데도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그날 아침 눈뜨고 일어난 침대에서 찝찝한 기분과 온몸을 두들겨 맞은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필, 전화기도 벨소리로 해놓고 자는 바람에 요란한 벨소리가 인상을 쓰게 만든 아침이었다.

전화기의 번호를 확인하니 엄마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버스를 타고 바로 충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아까까지 들리던 그 목소리, 그 방문을 치던 소리, 할아버지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하나도 흐려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할머니의 삼일장을 치르고 난 뒤에, 난 식구들에게 그날 아침의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식구들은 말을 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너를 얼마나 걱정했고, 사랑하셨느냐고

본인이 저 세상 갈 때 너 걱정이 돼서 그렇게 무섭게 나온 것 같다고.
그런 꿈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정을 게 만드려고 꾼 꿈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이 너무 힘들어할까 봐 마지막으로 그렇게 찾아온 거라고..

문을 열어주지 않은 건 너무 잘했다면서, 하마터면 줄초상 치를 뻔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꿈은 정말 그 의미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꿈은 지금까지도 내가 겪은 가장 무섭고, 가장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그날 꿈에서 할머니에게 문을 열어줬더라면, 정말로 할머니를 만났을까?

아니면 절대 만나서는 안될 무언가를 만났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정을 떼고 가고 싶으셨을까?


난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꿈에서 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윤결